[흔들리는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 매각 미룬 대우조선 '몸값' 10분의 1로…금호산업도 같은 전철 밟나

입력 2015-08-04 19:07
은행 '기업 경영' 한계

무한 경쟁하는 기업들, 과감한 투자 힘들어
매각 늦출수록 가치 하락
은행이 장기 보유하기보다 빨리 새주인 찾는게 유리


[ 좌동욱 기자 ] “국책은행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제조업체를 계속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앞장서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산업은행 부행장 출신 기업 관계자)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 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채권단이 보유한 기업의 경영권 매각이 계속 지연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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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미룰수록 기업가치 낮아져”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금호산업의 경우 채권단은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가격을 원한다. 이렇게 해서 산출된 매각가격이 주당 5만9000원, 약 1조원 규모. 이는 시가(2만원)의 3배가량이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전문가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실상 채권단이 금호산업 경영권을 팔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금호산업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대략 시가의 30~60% 수준에서 결정된다. 경쟁이 치열해도 2배 이상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무리한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향후 제기될 수 있는 ‘헐값 매각’ 시비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옛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처럼 이익을 남기고 팔았는데도 헐값 매각 의혹이 나오는 상황에서 원금 손실을 내고 팔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2~3년 뒤 금호산업을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비경제적 논리나 이유로 매각 시점을 뒤로 미루는 것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하락을 불러와 오히려 채권단에 기회손실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채권단 관리를 받는 상태에서는 신규 투자가 제한되고 새로운 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이나 조선업처럼 경쟁이 심하고 변동성이 큰 산업의 경우 보수적인 은행이 장기 경영권을 갖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해양처럼 사실상 임명권자인 정부·정치권과 관리 책임자(산업은행)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기업가치 훼손도 상당하다.

기업 구조조정, 시장이 주도권 가져야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말 한화그룹에 매각을 시도할 당시 6조4000억원에 달했던 몸값이 현재 6000억원 안팎(매각 대상 지분 시가 기준)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반면 산업은행이 향후 유상증자 자금으로 최소 1조원 이상 투입할 것을 감안할 때 원리금은 천정부지로 늘어날 전망이다. 5년 전 3조원 넘게 주고 산 대우건설 가치도 1조4000억원으로 반토막 난 생황이다. “투입 원금 이자와 다른 투자처에 대한 기회비용 등을 고려하면 매각금액이 낮더라도 신속하게 주인을 찾아주는 게 합리적인 결정”(정영채 NH투자증권 IB대표)이라는 분석이다.

저성장 저금리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구조조정 실효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자전환과 대출금리 인하, 신규 자금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워크아웃 지원책이 기업 회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특히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원이 회사채, 기업어음(CP), 구조화 금융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도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에 의구심을 낳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 동양그룹, 동부그룹, 웅진그룹 등 구조조정을 선택한 대기업은 채권은행 중심의 워크아웃보다 법원 중심의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과 국책은행 내부에서도 구조조정의 주도권이 채권단 중심에서 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한 차례 이상 경쟁입찰로 형성된 기업 매각 가격에 대해서는 국회, 감사원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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