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경영권 세습 악용 막겠다" 상법개정안 발의
최재천 "노동개혁보다 재벌개혁…순환출자 손봐야"
여야, 신동주·신동빈 국정감사 증인 채택 추진키로
[ 이정호 기자 ]
롯데그룹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연일 대기업 개혁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야당 일각에선 롯데그룹을 겨냥한 표적 입법은 물론 이미 추진 동력을 잃은 반(反)대기업 법안의 재논의까지 주장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롯데 사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구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벌개혁이 노동개혁보다 먼저”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의장은 4일 롯데 사태와 관련, “한국 재벌에는 가족만 있고 사회가 없다. 경영이 없고 지배만 있다”며 “재벌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권한 집중을 막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재벌개혁이 노동개혁보다 먼저이거나 최소한 노동개혁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롯데그룹을 겨냥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난 3일 자사주를 처분하는 경우 각 주주가 가진 주식에 따라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토록 하는 등 자사주 처분 조건을 강화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기업이 자사주를 이용해 우호 세력을 확보하고, 이를 경영권 세습에 악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 정관이나 이사회가 결정할 일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것 자체가 경영권 침해”라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 반(反)기업 법안 우려
야당은 이번 롯데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 드러난 순환출자로 얽힌 일부 대기업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손질할 태세다. 이참에 신규 순환출자뿐만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 고리까지 끊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 개정안은 여야 간 이견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여당은 부정적이다.
정무위 여당 간사인 김용태 의원은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삼성그룹, 현대자동차를 해체하자는 얘기”라며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계는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해 제동을 건 사태를 계기로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이 롯데그룹 논란과 맞물려 지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맞서 기업에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주식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롯데 정조준하는 여야
여야는 다음달 4일 시작하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롯데 瀏?경영권 분쟁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계획이다. 정무위 소속의 야당 의원실 보좌관은 “국민의 큰 실망을 불러온 이슈가 된 만큼 국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후진적인 경영권 승계구도, 기형적인 지배구조 문제는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는 만큼 불법적인 일감몰아주기 정황은 없는지 따져볼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그룹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기업 연관성이 큰 상임위에선 롯데그룹 두 형제를 증인으로 중복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