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의존=생존 위협' 강박감
만성 땅 부족에도 제조업 '사활'
[ 임근호 기자 ] 1998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는 지도에 표시된 작은 빨간 점(little red dot)일 뿐”이라며 “싱가포르를 친구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하비비 대통령은 이후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외세의 위협에 강박감을 갖고 있던 싱가포르는 ‘작은 빨간 점’을 국가운영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항상 ‘자급자족’을 강조한다. 지도에 작은 점으로밖에 표시되지 않는 소국으로서 다른 나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언젠가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홍콩과 달리 제조업 육성에 힘을 쏟은 것도 그 때문이다. 금융산업만 발전시키면 해외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때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싱가포르는 정유·석유화학, 반도체, 조선기자재 등 기초가 되는 산업을 발전시켜 글로벌 공급사슬망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국부펀드인 테마섹을 활용해 해외 유망 산업 및 기업에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자급자족에 대한 강박은 싱가포르 경제에 灌是?되기도 한다. 홍콩이 중국 본토의 선전시를 생산기지로 활용해 땅 부족 문제를 보완한 것과 달리 싱가포르는 북쪽에 인접한 말레이시아 조호르 지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길 주저하고 있다. 또 주변국이 적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싱가포르는 전 국토의 5분의 1을 군사지역으로 할당하고 있다. 좁은 땅에 공군기지만 다섯 곳이다. 싱가포르 남성은 2년 동안 의무 복무해야 한다. 작년 싱가포르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3%인 124억달러였다. 약 50억달러인 말레이시아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