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거장 조훈현 9단
바둑 인생 되돌아본 에세이 '고수의 생각법'으로 큰 인기
고수의 조건은 인품과 당당함…최선을 다하는게 고수의 예의
[ 이윤경 / 이승재 기자 ]
최근 자신의 인생을 ‘복기(復棋)’한 책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펴낸 데 이어 한국 현대 바둑 70주년을 기념한 조치훈 9단과의 특별대국 등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조훈현 9단(62·사진)을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는 아홉 살에 세계 최연소 프로 바둑기사가 된 이후 국내외 바둑대회에서 최다승(1938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한·중·일 최정상 기사들이 참가한 제1회 ‘잉창치배(應昌期杯)’에서 내로라하는 세계 일류 기사들을 차례로 꺾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변방으로 평가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바둑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바둑은 고도의 집중력과 계산력이 요구되기에 보통 20대에 절정의 꽃을 피운다. 나이가 들수록 승리보다 패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조 9단이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새까만 후배 기사들과 반상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둑은 제 인생의 전부죠. 이젠 승패에 연 ??나이도 아니고요. 바둑 그 자체를 즐기면서 후진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조 9단은 빠르고 공격적인 기풍으로 유명하다. 판세가 수세에 몰려 있어도 상대가 작은 허점이라도 보이면 재빠르게 파고들어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는다. 조 9단은 “(공격적인 기풍은) 고수의 예의”라고 말했다. “한창땐 바둑판 위에서 하도 세게 밀어붙인다고 해 ‘전신(戰神)’으로 불렸어요. 어렸을 땐 안 싸우고 도망 다니면서도 잘만 이겼는데, 나이가 들면서 계속 잡히고 박살 나니까 나도 모르게 싸움꾼으로 돌변하더군요(웃음). 승부의 세계란 원래 그런 것이지요. 고수가 갖춰야 할 싸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는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조 9단의 말대로 바둑엔 무승부가 없다.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고개를 숙이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수많은 혈투를 치르며 세계를 제패한 조 9단은 고수의 비결로 인품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어릴 적 바둑 스승(고 세고에 겐사쿠)이 나를 받아들인 건 바둑보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대국에선 늘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고 상대를 도발하거나 야비한 플레이를 해서도 안 돼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이런 단련이 되지 않으면 정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을 갖추지 않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돼 있고요. 참 묘하지요.”
인간됨은 기본이고, 더불어 당당함도 강조했다. 조 9단은 “경험상 대국에서의 승패는 실력 차이보다는 기백과 자신감의 차이,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담력과 집중력의 차이가 더 큰 법”이라고 강조했다. “승부의 순간엔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고개를 치켜든 채로 당당하게 걸으려고 하는데, 표정과 자세만 바꾸어도 순식간에 놀라울 정도로 기운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조 9단은 우리가 바둑판에서 배울 점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복기하는 습관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바둑에는 승자와 패자가 머리를 맞대고 대국 내용을 되짚어 보는 복기가 있지요. 패자가 괴로운 감정을 누르고 복기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기를 해야 하는 건 그 과정을 거쳐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복기를 잘해 두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좋은 수를 깊이 연구해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죠.”
그는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며 “실패를 바로 볼 수 있어야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전문은 MONEY 8월호 참조
글=이윤경·사진=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ramji@hankyung.com
[8/7] 2015 한경스타워즈 실전투자대회 개막 D-8
[이슈] 40호가 창 보면서 거래하는 기술 특허출원! 수익확률 대폭상승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