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수익 내라는 연금법 102조는
국회 수준에 걸맞은 엉터리 규정
새누리, 최 부총리 크게 후회할 것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국민연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바보들의 논쟁에 끼어드는 것과 같다. 복잡성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법 제102조는 기금의 관리 및 운용에 대해 불가능한 목표를 명령하고 있다. 연금법은 우선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운용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률 주장만큼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요구는 없다. 국민연금은 무엇보다 영구존속을 가정하는 저축 계좌가 아니다. 사회적 부조로 나갈 돈을 저장해 놓은 임시저수지에 불과하다. 더구나 소멸시기가 정해져 있는 시한부 펀드여서 소멸과정의 현금흐름이 가장 중요한 관리목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연금법은 더구나 자산종류별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도록 연금이 운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정도는 안다. 시장초과 수익률을 내려면 한두 종목 혹은 소수 종목에 ‘몰빵’하는 방법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한국 주식 전부를 사들였다고 가정해보라. 연금수익률은 시장수익률과 같은 1이 되고 만다.
연금자산이 급속하게 불어나고 있는 국민연금이 미국 캘퍼스나 다른 나라의 소규모 연금펀드보다 점차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운용본부의 투자 실력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성립한다. 자산이 커질수록 시장수익률을 달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연금을 공사체제로 바꾸거나 고연봉 펀드매니저들을 유치하면 수익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도 허무개그에 가깝다. 수익률을 1% 올리면 연금고갈시기가 몇 년 연장될 것이라는 주장도 웃기는 얘기다.
지난주 국민연금 개편 세미나에서도 한결같은 주장들은 낮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공사화가 필요하다는 결론들로 이어졌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소규모 직역펀드 따위와는 성격도, 자금흐름도, 책임 범위도 다르다. 해외 투자를 늘리고 대체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저마다 투자 훈수를 두는 모양새는 가관이다. 만일 해외 투자를 장려한다면 국내 휴가를 가자거나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선 곤란하다. 연금으로 해외 빌딩을 대거 사두자는 식이라면 이는 국민연금의 캐시플로조차 모르는 사람의 순진한 주장일 뿐이다. 국민연금은 2030년이면 벌써 캐시아웃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엘리엇이나 론스타 같은 사적 펀드가 결코 아니다.
공사화한다는 주장은 더구나 놀랄 만한 주장이다. 국민연금은 2040년이면 2560조원까지 기금 규모가 불어난다. 불과 20년 후인 2035년이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0%다. 이런 펀드가 하나의 단일 기구로 존재할 때 나타날 부작용, 영향력, 무소불위의 권력은 상상키 어렵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연금공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 어떤 투자계획이든, 그 누구를 최고경영자(CEO)나 이사로 선임하든, 이번 삼성물산 경우처럼 그 어떤 합병계획이든 이제는 연금공사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 허락을 받아야 한다. 누가 국가권력을 쥐느냐의 문제는 곧바로 누가 연금공사를 장악하는가 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문제다. 연금이 비대해지면 시장수익률이 바로 연금수익률이 되고 말듯이 앞으로는 정권을 장악한 자가 바로 한국 산업까지 장악하게 된다.
이는 연금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그리고 그것의 정확하게 같은 이름인 국가사회주의다. 단순히 연금 관리를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주인 얼굴의 똥파리를 잡기 위해 앞발을 내리쳐 주인을 죽였다는 어리석은 곰과 다를 게 없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괴물이다. 공사화가 아니라 소규모 펀드로 분할하든지, 아니면 각 가입자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운용사를 선택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이 옳다. 최경환과 새누리당은 나중에 바보 소리를 듣거나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의 부작용은 국회선진화법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경제계도 이 일을 두고만 볼 것인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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