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교정 '게놈 에디팅'…축복인가 재앙인가

입력 2015-07-26 22:29
유전자 가위 치료 범위 논란

국내연구진 혈우병 치료
中선 빈혈 유전자 교체
벌써 '맞춤형 인간' 우려도

수정란 연구, 한국선 불법
現생명윤리법 너무 엄격해
질병 치료위한 연구 허가를


[ 이호기 기자 ]
국내 연구진이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혈우병을 고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혈우병은 체내 혈액 응고 인자가 부족해 피가 잘 멎지 않는 병이다.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하는 대표적인 유전 질환이다. 1만명에 한 명꼴로 발병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는 리보핵산(RNA) 기반의 인공 효소다. 이를 통해 혈우병 유전자를 정상으로 교체해 근본적인 혈우병 치료 길을 연 게 이번 연구 성과다.

앞서 지난 4월 중국의 한 연구팀은 인간 수정란(배아)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했다. 불임 클리닉에서 얻은 수정란 86개에서 빈혈을 일으키는 ‘변이 헤모글로빈베타(HBB)’ 유전자를 잘라냈다. 48시간 뒤 71개 수정란이 생존했고 이 가운데 28개는 정상 유전자로 바뀐 것막?확인됐다. 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면 태어날 아이가 빈혈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정란 치료’ 연구 목적도 불법

빈혈이나 혈우병이 아닌 피부색이나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라면 어떨까. 유전자 기술이 발달하면서 외모와 지능 등을 부모가 선택해 ‘맞춤형 아기’를 낳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를 둘러싼 이른바 생명 윤리와 관련한 논란이 불가피한 이유다.


현행 생명윤리법(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유전자 치료가 가능한 범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유전 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 치료를 위한 연구 외에는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없다. 그나마도 배아 난자 정자 및 태아에 대한 유전자 치료는 아예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진행된 수정란에서 빈혈 유전자를 제거한 연구는 그 자체가 국내에선 불법이다. 줄기세포 전문가들이 일본 등 외국보다 엄격한 규제 탓에 국내에서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혈우병 유전자 치료 연구를 주도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은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정란을 대상으로 한 순수 연구조차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다소 지나친 측면이 있다”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치료 영역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는 앞으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 아닌 교정”

김 단장은 지난 23일 미래창조과학부 브리핑실에서 혈우병 치료 연구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한 뒤 이례적으로 ‘유전자 조작’이나 ‘유전자 편집’이란 표현을 언론에서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연구를 영문으로 ‘게놈 에디팅(genome editing)’이라고 한다. 이를 언론이 유전자 조작 또는 편집 등 부정적인 어감의 용어로 번역하면서 일반 대중에 불필요한 오해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단장은 “게놈 에디팅은 32억쌍의 염기로 구성된 인간 유전체에서 단 하나의 염기를 바꾸는 게 가장 일반적”이라며 “32억분의 1에 해당하는 변이를 놓고 조작이나 편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자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 유전자변형식품(GMO)이 한때 유전자조작식품으로 번역돼 아직도 국내 소비자의 거부감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 같은 사례가 유전자 치료 연구에서도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의료·제약은 물론 농축산업 분야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해줄 제도만 도입되면 성장 정체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과학계의 바람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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