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속도 내는 영국
개혁 고삐 죈 보수당 정부
"정부 비효율 제거…번 만큼 쓰는 나라 되자"
법인세·상속세 내리고 노조 파업은 어렵게
복지축소 등 '인기없는 정책'에도 여론 지지
[ 나수지 기자 ]
영국 보수당이 지난 5월 총선거에서 예상보다 높은 지지율로 의회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뒤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정부 지출과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파업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등 굵직한 개혁안을 잇달아 내놨다. 노동 관련 개혁안은 2010년 출범한 보수당 1기 연립정부 시절, 함께 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던 것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부”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22일 모든 정부 부처에 2019~2020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까지 예산을 최대 40% 삭감하는 계획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정부 부처 지출에서 200억파운드(약 35조원)를 줄이겠다는 목표다. 오즈번 장관은 9월까지 각 부처로부터 계획안을 제출받은 뒤 오는 11월25일 ‘예산 점검 보고서’를 발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보수당은 지난 1기 정부에서도 각 정부 부처 지출을 축소했다. 정부를 작게 유지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캐머런 정부의 일관된 철학이다. 오즈번 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예산을 신중하게 관리하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머런 정부는 또 지난 8일 예산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세금을 적게 걷고 복지 혜택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법인세를 현재 20%에서 2020년 18%로 내리고, 65만파운드인 상속세 부과 기준을 내년 4월부터 100만파운드로 상향 조정해 세금을 덜 걷기로 했다. 복지예산에서 120억파운드를 줄이기 위해 근로 연령층 가구당 연간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도 내놨다.
예산안을 발표한 뒤 캐머런 정부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부임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복지 혜택을 줄이되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대가를 준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추진 중인 개혁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 5년 안에 국가재정을 흑자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성공한다면 18년 만의 재정흑자다.
캐머런 정부는 노동조합과 관련한 개혁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5일 노동조합의 파업을 억제하는 법안을 공개했다. 연립정부 때 입법을 추진했다가 자유민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포기했던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공공서비스 노조는 파업 찬반 투표에 노조원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고, 40%가 찬성해야 합법적인 파업으로 인정받는다. 노동자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시민에게도 파업으로 불편을 겪지 않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이유다. 노조는 파업 2주 전 사용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파업시 고용주는 대체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대규모 개혁에도 잠잠한 여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22일 사설에서 “오즈번 장관의 정책이 대규모 개혁임을 감안할 때 여론이 놀라울 정도로 잠잠하다”고 평가했다. “의회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권한을 축소하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등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비교적 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2010년 보수당이 노동당을 제치고 집권한 뒤 영국 경제가 나아진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보다 낮았던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보수당 집권 이후 유로존을 넘어섰다. 지난해 영국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2.8%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오즈번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980억파운드의 비용을 절감했지만 국민건강보험(NHS) 만족도가 높은 수준을 보이고, 범죄율이 떨어졌으며, 좋은 평가를 받은 공립학교도 늘어나는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오히려 나아졌다”며 개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