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현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yhshin@kriss.re.kr >
뉴스마다 일기예보가 빠지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가뭄을 겪으면 단비를 기다리고, 태풍 소식이 있으면 마음을 졸이며 수해나 강풍에 대비한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었던 옛날에는 이런 걱정이 더 컸을 것이다. 특히 강우량은 농사의 흥망을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지역별, 계절별 강우량을 정확히 재고 분석해 작황 예측에 사용했다.
강우량 측정 기구라 하면 대부분 측우기를 떠올린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측우기는 빗물의 양을 재는 원통형 그릇 모양으로 전국에 배치됐다. 조선 정조 시대에는 시간대별로 강우량을 적었다. 그 기록의 양이 12년간 500여건에 달한다. 이렇게 기록한 지역별 강우량은 조세정책의 기준 자료로도 활용됐다.
창경궁과 창덕궁의 모습을 담은 국보 249호인 동궐도를 보면 궁궐 안에 측우기를 설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우량을 제대로 측정하는 게 농사 발전과 합리적인 조세의 시작점이고, 이것이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너비 14㎝, 높이 31㎝ 크기의 측우기는 해시계나 자격루에 비해 모습은 단순하지만 그 규격이나 구조가 매우 과학적이다. 측우기의 원통 너비는 바람의 영향을 고려한 크기다. 너비가 너무 좁으면 바람이 불 때 빗물을 받기 힘들고, 너무 넓으면 측정오차가 커진다. 측우기의 높이는 측우기 외부로 떨어진 빗방울이 측우기 안으로 튀어 들어가거나, 반대로 안에 떨어진 빗방울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방지한 치수다.
측우기는 3단으로 분리할 수 있다. 측우기에 저장된 물은 자를 안에 넣고 재야 하는데, 강우량이 적을 경우 분리해서 더 쉽고 정확하게 물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측우기는 지금 사용해도 세계기상기구(WMO)의 강수량 측정 국제규격에 부합할 정도로 훌륭한 측정 장치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낸 최고의 발명품 측우기. 측우기를 볼 때면 ‘국민 행복을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슬로건이 절로 생각난다.
신용현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yhshin@kriss.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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