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클래식 연장 접전 끝에 장하나 제치고 우승
준우승만 세 차례 '설움' 씻고 LPGA 첫승
캐디백 멘 아버지·볼빅 '뒷바라지'에 보답
[ 이관우 기자 ]
“꿈이 이뤄졌어요. 아빠한테 이제 쉬시라고 말할 수 있게 돼서 너무….”
환한 미소로 인터뷰를 시작한 최운정(25·볼빅)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는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꿈을 이룬 감격보다 미안함이 더 컸던 것일까. 최운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 미안해! 7년이나 걸렸어. 좀 더 일찍 우승했더라면….’
딸의 인터뷰를 멀찍이서 지켜보던 아버지 최지연 씨(56)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였다. ‘해낼 줄 알았어. 네 기다림에 비하면 캐디 7년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전문 캐디와 훨훨 날아가렴. 대견하다 내 딸….’
◆“아빠 이젠 편히 쉬세요”
최운정이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이랜드메도스GC(파71·6512야드)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마라톤클래식(총상금 150만달러)에서 장하나(23·비씨카드)를 연장 접전 끝에 따돌리고 생애 첫 우승컵을 안았다. 2008년 LPGA 2부투어 격인 시메트라투어에 뛰어든 지 7년, 2009년 진출한 정규투어 157경기 만에 거둔 감격의 첫 승이다.
그는 대회 최종일인 이날 버디 5개를 잡아내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로 동타를 친 장하나와 연장 승부를 벌였다. 최운정은 연장 첫 번째 홀인 18번홀(파5)에서 파를 지켜 보기에 그친 장하나를 물리치고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우승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사실 특별한 한 방이 없어 줄곧 ‘애버리지(평균) 프로’로 분류돼왔다. 드라이버 정확도가 전체 3위(83.57%)에 올라 있는 걸 빼고는 비거리 순위 111위(243.37야드), 그린적중률 31위(71.02%), 평균 퍼팅 수 69위(30.18회) 등 콕 찍어 말할 게 별로 없다.
기회를 만든 건 성실함이다. 올해 열린 18개 대회에 모두 출전해 이 부문 1위다. ‘자신을 독하게 다독이지 않고 체력과 기술훈련을 게을리해선 불가능한 기록’이라는 게 임경빈 프로의 평이다. 최씨 역시 “딸은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런지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자정까지 연습에 몰두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름 앞에 자칫 ‘준우승 걸’이란 별명이 붙을 뻔했다.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친 게 세 번이다. 지난해 2월 ISPS한다호주여자오픈과 2012년 6월 매뉴라이프파이낸셜클래식, 2013년 11월 미즈노클래식에서 그는 준우승의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최운정은 “이제 골프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운정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올해 LPGA투어에서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인 11승을 일궈냈다.
◆또 다른 아버지, 또 다른 기다림
경찰관(서울 혜화경찰서) 출신인 아버지 최씨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7년간 캐디를 맡았다. 최운정이 미국 여자 골프 2부투어인 시메트라투어에서 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우승을 기다리는 것보다 힘들었던 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최씨는 “우승을 못한 게 전문 캐디가 아닌 아빠 때문이란 말을 이제 듣지 않게 됐다”며 “당분간 골프백을 메겠지만 곧 전문캐디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고생을 한 사람은 또 있다. 최운정을 5년간 후원해온 볼빅의 문경안 회장(57)이다. 최운정이 ‘또 다른 아빠’라고 부르는 그는 특별함을 보여주지 못했던 2011년 최운정을 발탁했다. 주변에선 말이 끊이지 않았다. 우승을 못하는 게 국산 컬러볼 때문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많았다. 문 회장은 굽히지 않았다. 최운정 역시 볼빅의 오렌지색 공만 쓰며 스폰서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오렌지 걸’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래서다.
문 회장은 “골프는 재능보다 성실함이다. 마라톤처럼 길게 봐야 하는 거다. (운정이가) 곧 일을 낼 것”이라며 주변의 수군거림을 일축했다. 믿음은 결국 통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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