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늘어나기만 한 '부가가치세 면제'
'저소득층 부담 완화' 免稅 취지 퇴색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稅감면 확대
[ 조진형/이승우 기자 ]
정부는 1977년 부가가치세를 전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면세 대상을 정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 부담을 지게 되는 부가세의 역진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면세품목은 가공하지 않은 농·축·수산물이나 수돗물 연탄 무연탄 생리대 등 서민 생활필수품들로 구성됐다. 각종 병원이나 한의원 등이 제공하는 의료보건서비스나 학원 등이 제공하는 교육용역, 금융·보험용역이 포함돼 있다. 부가가치세법 제26조에 규정된 이 같은 면세 대상은 38년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다.
◆성역화된 부가세 면세
현실에 맞지 않는 부가세 면세품목은 한둘이 아니다.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내야 하는 영어유치원도 ‘교육용역’에 포함돼 부가세 면세 혜택을 받는 ? 한의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다이어트 한약’도 부가세를 내지 않는다. 이처럼 부가세 면세 대상이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역진성 해소라는 취지와 맞지 않게 세금을 깎아주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한국의 부가세 면세 대상 상당수는 선진국에선 과세하고 있는 품목이다.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공통으로 면세해주는 대상은 주택임대료와 토지거래, 공익단체 서비스, 도서관 이용 등에 불과하다.
유럽 선진국도 의료보건서비스와 교육용역에 대해 부가세를 감면해 주지만 각각 공익 목적의 의료행위와 비영리교육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선진국 눈높이에 맞춰 생리대나 책 등에 대해 부가세를 매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4년 전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나 애완견 진료에 대해 예외적으로 부가세 면세를 푼 게 유일한 성과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와 비교해 서민 필수품이 많이 바뀌었지만 기존의 면세 품목에 과세하는 데 대해 해당 업계와 정치권의 반대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중고자동차에 대해 부가세 공제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담았지만 결국 국회에서 ‘없던 일’이 됐다.
◆국회선 포퓰리즘 법안 남발
오히려 ‘국회 리스크’로 인해 부가세 면세 대상은 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부가가치세법이 아니라 조세특례제한법을 이용해 한시적으로 부가세를 면세해주는 대상을 계속 추가해왔다. 지난해 세법 개정 때도 조특법상 부가세 면세 대상에 고속버스를 포함했다. 올해 4월부터 3년 동안 한시적으 ?부가세를 매기지 않지만 고속버스 요금은 내리지도 않았다.
정부는 올해 말 종료(일몰)되는 부가세 면세 기간을 연장해야 할지를 고심 중이다. 올해 말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 공급하는 석유 △농어업 경영 및 대행용역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시내버스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전기버스 등에 대한 부가세 면세 혜택이 종료된다.
국회에선 포퓰리즘식 부가세법 개정안이 경쟁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지난 4월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교복 부가세를 면세해주는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달 같은 당의 김현미 의원 등은 유실·유기동물에 대한 구조·보호조치와 진료용역에 대해 부가세를 면세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부가세 면세 대상을 줄이는 것은 어렵지만 면세 대상을 늘려달라는 민원은 쏟아지고 있다”며 “부가세 면세 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면세 대상에 추가해 달라는 민원을 막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조진형/이승우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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