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일단 유로존 퇴출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는 벗어났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그리스는 유로존 정상들이 860억유로의 3차 구제금융을 결정하면서 요구한 자구책을 이행하려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이번 합의안은 그리스가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61%의 압도적인 반대로 거부했던 채권단의 기존 구조개혁 요구안보다 훨씬 강력하다. 연금은 지급액 삭감에다 수령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늦춰지고, 재정 강화를 위해 식당 호텔 등의 부가가치세율과 법인세율도 올려야 한다. 노동유연성 강화 등 노동시장 개혁에다 상점의 일요일 영업제한, 우유 빵 등의 영업활동 제한, 지역별 약국면허 제한 등 이른바 동반성장류의 규제도 대폭 폐지해야 한다. 여기에 국유재산 민영화를 위해 500억유로의 펀드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 의회가 15일까지 4개 법안, 22일까지 2개 법안을 처리해야 하는 조건이 달렸다. 그리스로선 꼼짝달싹 못 하게 됐다. 외신에선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그리스의 완패, 그리스의 재정주권 포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스 경제상황은 암울하다. 공공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GDP의 177%인데, 경제성장률은 6년째 마이너스다. 제조업은 변변한 기반이 없어 수입이 수출의 175%에 달하는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이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형편에 그나마 부가세와 법인세까지 인상되면 여건이 더 나빠질 것이다. 이런 구조로는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 부채를 갚기가 쉽지 않다. 이미 받은 두 번의 구제금융도 갚을 능력이 안 된다. 그리스가 시간을 벌었을 뿐, 결국 4차 구제금융이 불가피할 것이란 비관론이 벌써 나온다.
이번 협상으로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의 퇴임, 의회 해산 등 정국이 불안해질 것이란 게 외신들의 전망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스 국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더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일은 덜 하면서 국가가 퍼주는 연금으로 흥청망청 쓰고 살아오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부채탕감이 아니라, 스스로 더 땀 흘리고 노력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래야 독일 메르켈 총리가 지적한 ‘잃어버린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공짜점심은 없다. 그리스의 미래는 그리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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