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임금, 경직된 고용시장…성장 주역에서 추락하는 제조업
세금은 낮추고 규제는 철폐한 美 텍사스의 '성장 기적' 배워야"
박종구 < 초당대 총장 >
한국의 제조업이 기로에 서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은 지난 40년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높은 임금상승률, 경직적 노사관계, 둔화된 생산성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주력 제조업체의 실질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근로자 연봉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두 배나 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추월했다. 임금인상은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 전체 생산성은 선진국의 70% 선에 불과하다.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48.3세로 빠르게 노화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8.1%로 결정됐다.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고율 인상 시 절반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고용을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독일의 경우 시간당 8.5유로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이후 1분기에만 23만7000명의 ‘미니 잡’이 줄어드는 등 중소기업의 고용감소 현상이 뚜렷하다.
중국의 도전이 매섭다. 한·중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조선은 1.7년, 디스플레이는 1.5년, 반도체는 1.3년 격차에 불과하다. 최근 중국 정부는 ‘제조 2025’를 발표했다. 차세대 정보기술, 항공우주설비 등 10대 중점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제조업은 국민 경제의 주체로서 입국(立國)의 기본이고 흥국(興國)의 도구이며 강국(强國)의 기초다”며 2049년까지 세계 최고 제조업 강국 달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제조혁신을 위해 독일 기술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기술강국 독일이 제휴하면 글로벌 생산 분업 구조가 급변하게 된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제조업의 아킬레스건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경쟁력 평가에서 노동 관련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바닥권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38위에서 70위로 추락했다. ‘하르츠 개혁’으로 고용유연성과 임금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 독일을 유로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만들었다.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난 것은 실질임금 안정과 선제적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원가절감과 시장근접성이 해외 이전 기업의 본국 유턴을 촉진했다. 이런 견지에서 ‘텍사스 기적’이라 불리는 텍사스주의 산업진흥 모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5년간 고용이 25% 늘어나 220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 소득세가 없으며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적고 에너지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유인에 힘입은 바 크다. 소위 ‘낮은 세금 낮은 규제’ 정책이 텍사스 기적을 구현했다. 오스틴 댈러스 휴스턴이 세계적 대학, 병원 및 대기업의 허브도시가 돼 성장을 견인했다.
제조업에 대한 규제를 시급히 철폐해야 한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의하면 규제에 따른 기업 부담이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규제비용 비율이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다.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도 미흡하다. ‘기업지원=특혜’라는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일본이 1999년 산업활력법을 제정한 것이 히타치, 도시바, 신일철주금 등 제조업체 부활의 초석이 됐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 노력이 엔저와 맞물려 빛을 발했다.
고용유연성 제고 노력이 시급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연성 제고를 비롯한 노동시장 개혁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필수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경직적 고용구조는 생산성 향상의 최대 장애물이며 기업 복원력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다.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청년실업률도 고용경직성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싱가포르가 연평균 7% 제조업 성장과 제조업 비중 25% 유지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제조업 발전 없이는 균형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깊이 고민할 때다.
박종구 < 초당대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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