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무령왕릉 첫 등재 시도
지자체 5곳 협력이 성공 요인
'일본 산업시설 등재'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 경사' 아쉬워
[ 이미아 기자 ]
‘주목받지 못한 경사’가 돼 버린 게 솔직히 많이 아쉽습니다.”
지난 4일 충남 공주·부여,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2011년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추진위원장으로 관련 실무를 이끌어온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66·사진)는 8일 전화인터뷰에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갈등이 불거지면서 백제 유적의 등재가 상대적으로 묻혀버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선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삼국시대 연구 분야 권위자로 손꼽히는 노 교수는 국내에서 백제사 연구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1960~1970년대만 해도 고대사 연구에선 신라 관련 자료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고구려였다”며 “사람들이 많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하고 싶어 백제사 연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백제 문화를 파고든 그에게 백제 유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건 그만큼 각별하다.
노 교수는 백제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가장 큰 이유로 지방자치단체 간 긴밀한 협력을 꼽았다. “백제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려 시도한 것은 1994년부터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공주에서 무령왕릉과 공산성, 부여에서 부소산성 등 지자체들이 따로 추진했어요. 그러다 보니 유네스코를 설득할 만한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웠고, 행정 절차도 복잡했죠. 지자체들끼리 뭉치지 못한 게 등재 실패의 주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 충청남도, 전라북도 등 5개 지자체는 문화재청과 2011년 1월 백제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등재를 위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듬해 학계가 중심이 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와도 꾸준히 접촉했다.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고, 그해 9월 유네스코에서 유적 현장 심사를 위해 방한했다. 노 교수는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 순간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백제 역사를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알기 쉽게 효율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은 △창의성 △타 문화권과의 교류 △독보성 △경관 △자연의 효율적 이용 △인류 역사상 중요 사건과의 연관성 등 여섯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 기준들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탁월하고 보편적인 가치’다. 모든 문화권에서 이해될 수 있으면서도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백제 유적은 여섯 가지 중 교류와 독보성 두 개 기준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노 교수는 “지자체들이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백제’란 이름을 세계에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네스코에선 국내 유적에서 나타나는 백제만의 독특한 건축기술과 백제가 일본에 불교와 유교문화를 전파한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백제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마침내 삼국시대 유적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편입됐다”며 “앞으로 백제문화를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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