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합병 시비 거는 엘리엇의 노림수

입력 2015-07-08 20:54
수정 2015-07-09 05:42
"단기이익 극대화 꾀하는 헤지펀드
무방비 기업들만 큰 곤욕 치러

경제력 집중이란 망령서 벗어나
경영권 관련 법률 일관되게 정비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지난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삼성물산 주주총회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양사 간 합병 비율(1 대 0.35)이 법령에 어긋남이 없고, 양사의 합병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양사 주가의 고·저평가 논란도 주가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예측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7일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낸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도 기각했다.

개방경제에서 외국인이 국내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에 외국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한 국제적 생산구조를 갖추도록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유일한 목적은 단기간에 많은 투자 수익을 얻고 떠나는 것이다. 겉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주주 이익과 지배구조에 대해 말하嗤? 그 역시 단기 이익 극대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헤지펀드는 국내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보통의 외국 투자자들 역시 주식투자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단기 이익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런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이 국제적 생산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순기능을 한다.

넓은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주인은 모든 주주지만 매일매일 주식회사 내의 자원 배분을 명령, 통제, 관장하는 사실상의 주인은 주주를 대신하는 소수의 대표단이다.

이를테면 이사회다. 나머지 주주들은 대표단에 경영을 위임한 주주들이다. 대표단의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의사를 가진 주주는 주식을 팔고 떠나는(exit) 방법이나 주주총회에서 목소리(voice)를 내고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주주, 특히 소액주주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 따르는 비용이 크므로 주식을 팔고 떠나는 방법을 택한다. 이번 엘리엇의 행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런 엘리엇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비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업의 합병은 기업가들이 경제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흔히 생기는 일이다. 이번 양사의 합병은 국내외 건설경기 장기 침체에 따른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를 타개하고 풍부한 글로벌 경험과 인력을 활용해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순환출자 고리도 단순해질 전망이다.

합병이 대주주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주주가 비밀리에 주컥?처분하고 회사를 청산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요즘 세상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분쟁을 계기로 또다시 대두되는 문제는 한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한계다. 한국 유수 기업들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은 높은 편이다. 반면에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규제는 많다.

그룹 내 금융계열사의 다른 계열사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공정거래법)과 계열사 주식 보유에 대한 제한(金産法)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대주주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 억제를 위해 합병 시 자사주 매각을 통한 우호 지분 확보를 방지하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한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동시에 발의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차제에 ‘경제력 집중’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 한국 기업의 경영권과 관련된 법률을 일관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양사의 합병 여부는 결국 삼성물산 주주들의 판단에 따르게 될 것이다. 주주들은 헤지펀드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2003년의 소버린과 SK, 2004년 삼성물산과 헤르메스, 2006년 KT&G와 칼 아이칸 간의 분쟁이 참고가 될 것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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