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채색한 붉은 빛의 고성(古城), 그 아래 다리엔 헤겔의 흔적이…

입력 2015-07-06 07:00
文·史·哲의 도시, 독일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는 내내 마치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긴 골목을 따라 독일 최초의 대학, 학생들을 수용했던 감옥,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 등이 차례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 속에는 감옥의 벽에 그림을 남긴 청년도, 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던 궁정인도 있었다. 흥미로웠던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귓전을 간질인다.

죄 지은 학생들을 수용했던 감옥

독일의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자리한 하이델베르크는 학문의 도시이자 관광의 도시다. 독일 최초의 대학이 있고, 전쟁의 폐허를 간직한 고성이 자리하며,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강이 흐른다.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이 도시에서 배출됐고, 이곳을 여행하며 흔적을 남겼다.

하이델베르크 여행은 옛 시가지로 향하는 하우프트 거리에서 시작된다. 독일 최초의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가 자리한 곳이다.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등이 이곳을 거쳐갔다. 철학자 헤겔과 카를 야스퍼스, 사회학자 막스 베버 등이 이 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5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하이델베르크대의 학생이거나 교수였다.

관광객의 흥미를 끄는 곳은 학생 감옥이다. 대학이 치외법권에 속하던 시절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수용했던 곳이다. 수용되면 3일 동안 물과 빵만 먹어야 하고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감옥에 다녀온 것이 무용담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분위기는 꽤 자유로웠던 모양이다. 감옥 건물로 들어가 입장료를 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의 감방을 볼 수 있다. 방마다 작은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학생들이 기록한 낙서가 가득하다. 비장한 각오를 드러낸 진지한 문장부터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모두 재치가 넘친다. 솜씨가 탁월한 그림도 많아 벽면은 마치 멋진 그라피티를 연상케 한다.

역사의 상흔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

학생 감옥을 나와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면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향하는 언덕길이 시작된다. 중반에 이르자 언덕 아래로 강이 펼쳐지고, 견고한 성벽이 위용을 드러낸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1226년 처음 요새로 지어졌고 점차 대규모 성의 형태로 증축됐다. 17세기 전후 전쟁과 낙뢰로 많은 부분이 파괴됐는데, 주요 건물만 복원하고 일부는 그대로 남겨뒀다. 웅대한 궁전과 대비되는 성벽의 폐허는 상처 입은 영웅처럼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하의 와인저장고에 보관된 거대한 큰 술통이다. 술통이 유명하다니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751년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의 명으로 만든 이 술통은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성안의 마실 물이 부족해질 경우에 대비해 제작됐다. 130그루의 떡갈나무로 만든 술통은 길이 9m, 높이 8m에 이를 만큼 거대하다. 저장 용량은 22만1726L에 달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으로 등재됐다.

술통 앞의 남자 목조각상도 이곳의 명물. “이 남자는 술통 관리인이었던 페르케오라는 인물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키 작은 광대였던 그는 소문난 애주가였죠. 하루에 18L의 포도주를 마시며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80세까지 살았는데, 의사로부터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와인저장고 직원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은 뒤 와인을 한 잔 사서 마셨다. 어쩐지 페르케오가 술 마시는 관광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철학자들이 걷던 길에서 바라보는 저녁 풍경

거대한 위용과 폐허의 잔해를 동시에 품은 성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렁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래의 주인을 찾아 내려간 곳은 1788년 세워진 카를 테오도르 다리다. 입구에서 멋진 군복을 입은 두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러시아 민요 칼린카(Kalinka)를 부른다. 소비에트 연방 군인들로 구성된 ‘붉은 군대 합창단’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다. 그 씩씩한 노래에 다리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는 듯하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는 산책로가 나온다. 칸트, 헤겔,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성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성과 다리가 그림을 이루고, 노을이 거기에 붉은 채색을 더한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듯, 지난 장소들이 머리를 스친다.화려하면서도 황폐했던 성, 어두운 감옥에 남겨진 재치 넘치는 낙서들, 다리에서 들었던 멋진 노래가 잔상이 돼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이것 만은 꼭!

하이델베르크 성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등산 열차가 운행된다. 성 앞까지의 왕복 요금은 입장료를 포함해 6유로이고, 산 정상의 전망대까지는 왕복 12유로, 편도 9유로다. 올라갈 때는 등산열차를 타고 도시 전경을 즐기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성을 돌아보며 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이드 안내를 요청하면 성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요금은 성인 기준 4유로며, 영어로 진행된다.

하이델베르크(독일)=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naver.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