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 높아지는 정유산업
유가 급락에 지난해 재고평가손실 2.5조원
세계적 정제설비 증설 경쟁에 셰일오일 가세
해외투자금 유치·원가경쟁력 높일 지원 필요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부과하는 할당관세 폐지 등
원가 경쟁력 강화 위한 제도적 지원책 마련도 시급"
최동원 <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정유산업은 2012년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를 차지한 한국의 핵심 산업이다. 하지만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제품이 주요 수출품목이고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유산업은 휘발유, 경유, 등유 등과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등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최근 들어 국내 정유산업이 흔들리며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1년 약 3조1000억원의 이익을 기록한 지 3년 만에 2조4700억원의 적자를 내며 대대적인 구조조정 필요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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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산업은 2000년대 기업 간 빅딜 및 대규모 설비투자,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수출 대비 내수 비중은 56 대 44였다. 2012년에는 한국 전체 산업 수출 중 10.2% 비중으로 1위를 차지했다. 석유정제 능력은 일본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지만 단일 규모 정제설비 능력은 SK이노베이션이 세계 2위, GS칼텍스 세계 3위, 에쓰오일 세계 4위로 규모의 경제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유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 변화는 크게 ‘급격한 유가 하락’과 ‘구조적인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구분할 수 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급격한 유가 하락은 막대한 재고평가손실을 초래하며 지난해 정유산업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는 데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정유사가 원유를 도입해 석유제품을 생산·판매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35~40일 정도다.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할 경우 재고평가이익과 손실이 상쇄되지만 유가 하락이 장기간 지속되면 심각한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의 2014년 재고자산 평가손실액은 2조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공급 넘치는 석유제품 시장
본질적인 위험 요인은 석유제품의 글로벌 공급 과잉이 굳어지는 추세다. 정유산업의 실적 악화는 안정적 고유가를 유지한 2012년부터 시작됐다. 국내 정유산업은 2011년 3조1000억원의 영업이 痼?기록했으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한 2012년 3710억원 적자를 기록한 이후 좀처럼 수익구조가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출 감소는 국내 재고량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마진이 낮은 국제 중개시장으로의 수출이 늘어나고, 생산설비 가동률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2014년 수출량은 전년 대비 각각 9.2%, 8.4%, 10.3% 줄었다. 석유제품 재고량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2019년까지 세계 신규 정제설비 증설 규모는 하루 830만배럴이다. 반면 2020년까지 석유제품의 글로벌 수요는 하루 690만배럴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특히 한국 석유제품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2012년부터 자국 내 수요(하루 1022만배럴)와 공급(하루 1154만배럴)의 역조 현상이 발생해 석유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2013년 대비 하루 220만배럴의 정제설비 확대를 계획 중으로 이는 단일 국가 신규 정제설비 증설 계획 중 가장 큰 비중인 30.4%에 해당하는 규모다.
고도화설비 투자 늘려야
세계 4위 정제설비 능력을 갖춘 인도도 2012년 하루 생산량(380만배럴)이 자국 내 수요(340만배럴)를 초과했고 설비 증설을 통한 수출 확대를 모색 중이다. 중동지역도 원유 수출 대신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수출 확대를 위해 2019년까지 하루 230만배럴의 정제설비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셰일오일 생산 확대에 따른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 증가도 글로벌 경쟁 구조를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4년 11월까지 원가 경쟁력이 높은 미국의 석유제품 수출은 하 ?약 273만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13.2% 늘었다.
국내 정유산업은 최근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할 만한 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국내 정유산업은 2000년대 1차 구조조정을 통해 상당한 경쟁력을 쌓았다. 고도화설비는 2000년대 후반 부가가치가 높은 중질유분해시설에 약 11조원을 투자하는 등 주요 수출 경쟁국인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품 품질에서도 까다로운 국내 제조 기준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공급 초과 환경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질적 고도화 중심의 체질 개선을 통한 제2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고도화설비 투자와 비용구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 정유산업은 단순 정제마진으로는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다. 고도화설비 투자를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 효율화와 다양화 전략이 필요하다. 고도화설비 투자에는 단위 공정별로 1조원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한 만큼 경쟁력 및 시너지 효과가 없는 비정유부문 사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효율적인 재무구조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
비용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경제성이 있는 비(非)중동산 원유 도입 등 다변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규격에 적합한 유종 발굴 및 도입처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을 위한 민관 협력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최근 추가적 유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단기 스폿 거래 활용 및 재고관리 최적화 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정부도 해외 투자자금 유치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정유사들이 고도화 및 사업 다각화에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부과하고 있는 할당관세 폐지 등 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
원유 도입처 다변화 필요
최근의 글로벌 환경 변화는 국내 정유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정제설비 평균 가동률이 2011년 70.4%에서 2012년에는 68%, 지난해 5월에는 60% 이하로 하락하며 석유제품 수입국으로 전환했다. 신규 설비증설 계획도 잇달아 지연되고 있다. 문제는 누가 선제적 체질 개선을 통해 글로벌 서바이벌 게임에서 버틸 체력을 구축하는지에 있다. 노후 정제설비에 대한 글로벌 구조조정 및 저유가에 따른 수요 증가, 환경규제 강화 및 동남아지역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 석유제품 수요 증가 등 기회 요인도 동시에 존재하는 만큼 민관 협력을 통한 위기상황 극복 노력이 절실한 때다.
최동원 <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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