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추경, 경기부양 효과 있나

입력 2015-07-03 20:30
[ 김주완 기자 ] 정부가 올 하반기에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국내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환자가 처음 발생한 이후 소비는 크게 위축됐다. 지난달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0.1%와 8.5% 감소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급격히 줄었다. 지난달 국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41% 감소했다. 가뭄도 심각하다. 5월 강수량은 작년 5월보다 44% 적고, 지난달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추경 편성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용 재원을 총동원해 성장률 3%대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경기 침체를 방치하면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인위적으로 경제성장률 3%대를 달성하기 위한 추경은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찬성 / 메르스로 침체된 黎?선제대응…유동성 풍부한 지금 효과 더 커

더블딥 우려 커져 불가피…구조개혁 병행을

정부가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경기 침체를 막고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는 데는 다소 아쉬운 규모지만, 그래도 과도하게 위축된 경제심리를 개선하고 영세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의 삶의 고통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경제는 추경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3년 2분기부터 겨우 되살아나기 시작하던 한국 경제는 작년 4월 세월호 충격으로 회복세가 일시적으로 주춤하는 소프트패치에 빠졌고, 4분기에는 세수 부족에 따른 재정절벽이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올해 들어 수출은 세계경기 부진과 저유가, 저환율이라는 삼각 파도에 휘말리며 6개월 연속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좀처럼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 수출마저 급감하면서 내수와 수출 동반 부진이 심화되는 와중에 6월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충격까지 엄습하면서 경제심리가 급랭하고 내수는 더욱 위축됐다. 소프트패치가 길어지면서 다시 침체기로 추락하는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추경이 ‘메르스 추경’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기 대응 추경’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 침체를 방치하면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고 결국 선진국 도약과 국민 삶의 질 개선도 영영 멀어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4?한국은행은 잠재 국내총생산(GDP)과 실제 GDP의 격차인 GDP갭이 -1.5%까지 벌어졌고 2016년에도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메르스 충격까지 겹쳤으니 GDP갭은 더 벌어질 게 분명하다. 그만큼 경제 자원이 활용되지 못하고 일자리가 줄어들며, 20조~30조원에 달하는 부가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력현상(履歷現象), 즉 마이너스 GDP갭 상태가 장기화되면 성장경로를 이탈해 성장 잠재력 자체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과가 미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낮고 유동성이 풍부할 때 추경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추경 자금 마련을 위해 국고채를 발행하더라도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고, 그만큼 금리 상승 압력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추경 편성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재정건전성 악화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4년 35.7%로,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5.1%)보다 현저히 낮다. 대규모 추경을 편성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이 만성화되면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으므로 추경은 일회성이어야 한다. 또 하나, 추경은 단기부양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등 성장잠재력 제고 정책을 중단 없이 밀고나가야 한다. 공공·노동·금융·교육의 4대 부문 구조 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 투자를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 개선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적 자원 약화에 대비해 여성 청년 고령층 등 취업애로 계층을 노동시장으로 이끌어 내고 개성공단 내 북한 노동력과 외국인 인력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반대 / 인위적 경기부양 바람직 안해…대규모 추경은 재정악화 우려

추경사업은 메르스·가뭄 대책에 맞춰져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가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10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15조원의 재정을 동원하기로 했다. 추경 재원은 대부분 국채를 발행해 마련하기 때문에 올해 말 570조1000억원으로 예상했던 국가채무는 580조원으로 증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7%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스와 가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대규모 자연재해라는 추경 요건은 이미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경기 침체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분기별 성장률이 0%대이기는 하지만 0% 중·후반으로 마이너스가 아닌 경기 상황을 추경의 요건인 경기 침체로 판단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추경이 의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체적 내용과 실행에 대해서 더 깊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정책수단으로는 크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있다. 소규모 경?변동에 대해서는 정책 시차가 짧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경기에 대한 인식, 정책 입안, 결정, 시행, 효과 발생 등 일련의 과정에서 보면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 정책 시차가 짧다. 정책 시행 후 효과 발생까지의 시차에서 재정정책이 더 짧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재정정책이 시행돼 어떤 경제주체의 소득으로 창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준금리가 변동돼 대출, 소비, 투자가 변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짧다고 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소규모 경기 변동에는 통화정책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반응해 대응해야 한다. 경기 변동의 진폭이 커지는 경우 재정정책이 함께 경기 변동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규모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금리정책만으로는 경기를 회복하는 데 부족하고, 경기 침체로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는 저소득층의 소득보장을 위해 소득분배에 중립적이거나 역진적인 금리정책보다는 소득분배 개선효과를 지닌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는 대외 악재로 인한 중간 정도 수준이고 이미 기준금리가 분기별로 지속 인하돼 사상 최저 수준(연 1.5%)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추경보다는 중간 규모의 추경이 바람직하며 정부가 제시한 15조원의 재정 투입은 중간 규모 추경의 상한선으로 보인다.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추경 예산의 구체적 내용이다. 현재 추경안은 너무 급하게 준비해 내용이 정교하지 않고 추경의 계기가 된 메르스 및 가뭄 대책과 연계한 부분이 추경 예산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한다.

추경 예산안에 메르스나 가뭄과는 관련 없는 도로 개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 무역보험기금 출연금, 신재생에너지 지원사업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 사업은 메르스 및 가뭄 대책으로 구성돼야 하며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추경 규모보다 작다면 추경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규모 추경을 짜는 것은 옳지 않다. 유럽 경제 불안과 중국 경제 연착륙 등 대외 악재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정책이라면 재정 건전성을 과도하게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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