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휴가

입력 2015-07-01 20:32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프랑스에선 “8월에는 시엥과 시누아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프랑스어로 시엥(chien)은 강아지, 시누아(chinois)는 중국인을 가리킨다.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거리에 애완견과 중국 관광객만 북적댄다는 얘기다.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는 ‘면제, 해제, 해방’이란 라틴어 vacatio에서 유래했다. 본래 학생 교사 법관 등에게 주어진 긴 휴가였다. 영어로 ‘방학, 휴가’를 가리키는 vacation도 같은 어원이다. 역시 휴가를 가리키는 영어 leave와 스페인어 permiso는 ‘허가’란 뜻도 있어 어감이 다르다. 한자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이어서 흥미롭다.

휴가의 원조는 정복왕 윌리엄이다. 노르망디 포도 수확을 돕기 위해 군인들에게 긴 휴가를 주던 관습에서 비롯됐다. 근로자 휴가는 1936년 프랑스가 주당 40시간 노동, 연간 15일 휴가를 법제화한 것이 시초다. 이후 기간이 1969년 4주, 1985년 5주로 늘어 프랑스인들은 한 달 놀기 위해 1년 일한다고 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1965년께 신문 표제에 바캉스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휴가라야 하루이틀 강가 물놀이 수준이어서 바캉스족을 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1970년대 초 신문 사설은 ‘한량들의 천박무쌍한 노출증, 치기에 찬 허영, 반사회적 행락’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1970~80년대 경제발전, 근로기준법 강화 등으로 여름휴가가 보편화됐다. 그러나 ‘7말8초’에 집중돼 교통체증, 바가지요금 등 가장에겐 고생길이기도 하다. 요즘엔 공항 체증도 낯익은 풍경이다.

최근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결과’를 보면 30~40대 직장인의 90%가 평소 피곤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쉬어야 편해질까. 월요병과 만성피로를 끼고 사는 직장인 중에 휴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화문의 명물 조각상 ‘해머링 맨’도 두 달간 망치질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갔다.

5년 연속 ‘일하기 좋은 기업’ 대상을 받은 이베이코리아는 무엇보다 5년근속 시 한 달간 유급 안식휴가를 주는 게 매력이다. 그런 점에서 10년 근속한 소방관에게 1년 안식휴가를 주자는 의원입법(박홍근 의원)은 반갑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들이 공무원 안식휴가제를 도입한 것은 선뜻 호응하기 어렵다.

최근 삼성전자의 ‘휴가혁명’이 이목을 확 끈다. 최대 1년간 자기계발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칸트는 “노동 뒤의 휴식은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라고 했다. 휴가도 일처럼 보냈던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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