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분배 정책의 수단으로 쓰는 게 옳은지 의문”이라는 이지순 한국경제학회장의 지적(한경 6월27일자 A5면 참조)은 금융의 역할에 대해 숙고해 볼 만한 화두다. 그는 ‘금융과 분배’란 정책심포지엄에서 “개인이나 기업을 복지(금융) 의존적으로 만들어 장기적으로 그들의 처지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리 있는 말이요 한경 사설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한 그대로다.
서민금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 등 소위 4대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비롯해 신용회복 지원, 장기연체자 채무경감, 대학생 저리대출 등 손꼽기도 힘들 정도다. 지원 총액도 20조원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최근 서민금융 종합대책을 또 내놨다. 은행의 연 10%대 중금리 대출 도입,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연 34.9%→29.9%) 추진, 4대 서민금융상품으로 항후 3년간 22조원 신규 지원 등이 망라돼 있다. 사실상 금융판 종합복지대책이다. 정책으로 할 일을 금융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금융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5~6년간 펼쳐온 서민금융의 그 많은 ‘착한 정책’들이 과연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는지, 연체·부실은 어느 정도인지, 지속 가능한지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따라야 한다. 이에 대한 검증도 없이 또다시 금융권을 총동원해 서민대출 늘리고 이자 깎아주라고 종용하는 것은 관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장에서 서민금융이 자생적으로 생겨날 여지를 아예 봉쇄하는 것이다.
금리는 누르면 내려가고 빚은 탕감해주면 사라질 것으로 여긴다면 순진한 발상이다. 그럴수록 한계선상의 취약계층엔 대부업체조차 문턱이 높아지고, 되레 빚은 더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게 금융의 속성이자 역설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의 원조인 그라민은행이 성과를 냈던 것은 금융을 시혜가 아닌 자활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금융이 시장원리에서 멀어질수록 금융회사와 수혜 대상자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다. 금융과 복지도 구분 못 하면서 금융경쟁력 운운하는 얘기는 헛웃음만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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