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차세대 먹거리 개인 서비스용 로봇
글로벌IT기업 인수합병 활발…日 소프트뱅크 감정로봇 '페퍼'
출시 1분 만에 초기물량 모두 판매…구글·도요타 등도 개발 주력
개인용 로봇 수요 급성장…산업화·고령화로 인구구조 변화
노인과 간단한 대화기능 등 갖춰…인공지능과 심부름은 아직 숙제
[ 나수지 기자 ]
키 121㎝, 몸무게 29㎏의 초등학교 2~3학년 몸집. 악수를 청하면 하얀 플라스틱 손을 내밀어 손을 맞잡는다. 상대의 음색과 표정을 살펴 말을 건넬 줄도 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 “눈은 안 웃고 있네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세계 최초의 인간형 감정인식 로봇 ‘페퍼’다.
일본 정보기술(IT)기업 소프트뱅크가 2012년 인수한 프랑스 로봇회사 알데바란을 통해 만든 페퍼는 지난 20일부터 일반인 대상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19만8000엔(약 179만원). 여기에 매달 1만4800엔(약 13만원)의 유지비를 내야 한다. 수리 지원을 받기 위한 보험료는 월 9800엔(약 8만원)이다.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가격이지만 초기 공급물량 1000대가 1분 만에 모두 팔렸다.
개인 서비스용 로봇이 연구실 ?벗어나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로봇은 사실 오래전부터 쓰였다. 대부분 자동차나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이다. 커다랗고 너무 빨랐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위험한 로봇이었다. 최근 속속 등장하는 개인 서비스용 로봇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고, 감정을 이해하기도 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페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집어넣은 로봇”이라며 “앞으로 이런 로봇이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급성장하는 개인 서비스 로봇시장
개인 서비스용 로봇시장의 성장 전망은 매우 밝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3년 보고서를 통해 세계 로봇시장에서 개인 서비스용 로봇시장 규모가 2018년 이후 산업용 로봇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로봇협회(IFR) 역시 세계 개인 서비스용 로봇시장이 매년 30% 성장해 2020년에는 536억달러(약 5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꼭 최첨단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 파로로봇이 판매하는 ‘파로’는 52㎝ 길이의 하프물범 로봇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털 인형이지만 센서가 달려 있어 쓰다듬으면 고개를 갸웃하거나 눈을 껌뻑이며 반응한다. 턱을 긁어주면 살아있는 동물처럼 머리를 위로 들고, 부르는 소리엔 머리를 돌려 쳐다본다. 가격은 5000달러(약 560만원)로 꽤 비싸지만 쓸쓸한 노인들에게 친구가 돼주며 미국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등에 수출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아이로봇의 원통형 로봇청소기 ‘룸바’를 비롯해 바비큐 그릴 청소로봇 ‘그릴봇’, 2000여개의 레시피를 가진 요리로봇 ‘몰리’, 식물을 인식해 필요한 곳에만 물을 집중적으로 뿌려주는 스프링쿨러로봇 ‘드로플릿’ 등 다양한 로봇이 상용화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가장 잠재력이 큰 분야는 인간형 로봇이다. 노인과 아이를 돌보거나 짐을 옮겨주고 쇼핑몰에서 길을 안내하는 등 앞으로 로봇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모두 사람 주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계단과 문, 엘리베이터 등 사람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로봇이 작동하기 위해선 로봇도 인간의 모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선점 나선 글로벌 기업들
글로벌 기업들도 인간형 로봇 분야에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중심인 IT 생태계가 미래엔 스마트 로봇으로 재편될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기업이 중심이다.
그중에서도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이다. 2013년부터 미국과 일본의 주요 로봇회사 9곳을 사들였다. 2013년 세계재난로봇대회 우승 로봇인 ‘에스원’을 개발한 일본 샤프트도 구글에 인수됐다. 이 대회에서 32점 만점에 27점을 얻어 2위 카네기멜론대팀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에스원은 사람처럼 핸들을 돌려 차를 운전하는가 하면 계단을 걷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사다리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키 188㎝의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개발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도 구글 품에 안겼다.
2012년 프랑스 알 Ⅹ帽塚?인수해 소프트뱅크로봇홀딩스(SBRH)를 세운 소프트뱅크는 지난 18일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대만 전자기기 생산업체 폭스콘과 손잡고 세계 톱 로봇회사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페퍼는 그 첫 번째 제품이다. 자동차회사 도요타는 우주인과 함께 생활하는 로봇 ‘키로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혼다 도시바 삼성전자 등도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선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술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도 구글은 가장 앞서 있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음성인식 기술, 동영상이나 사진 이미지 속에서 어떤 것이 사람이고 책상이고 꽃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 무인자동차 개발을 통해 습득한 위치 기술 등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형 로봇 보급은 시기상조 지적도
인간형 로봇이 널리 보급되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프트뱅크의 페퍼는 다리가 아니라 바퀴가 달려있어 평평한 곳에서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손가락은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시키기도 어렵다. 데이터가 쌓이면 더 똑똑해질 수 있지만 아직은 노인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약 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등의 작업만을 할 수 있다.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기 위한 인공지능 기술도 아직 부족하다. 올해 세계재난로봇대회에서 우승한 KAIST의 ‘휴보’를 포함해 대회 출전 로봇들은 인간처럼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여는 동작은 점점 발달하고 있지만 아직은 옆에서 사람이 조종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로봇은 휴대폰처럼 단시간에 桓0?성장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인간형 로봇은 수십년이 지나야 세상을 바꾸는 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