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욱 기자 ]
한국거래소는 2005년 1월 당시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시장, 선물거래소가 통합해 출범했다. 2000년대 초 벤처투자 ‘거품’이 급격히 꺼지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코스닥시장이 독자생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기술기업 중심인 코스닥시장에 대형기업 위주의 유가증권시장과 같은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운영하다 보니 시장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코스닥 분리론’은 주로 벤처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반면 한국거래소 측은 코스닥 분리보다는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선호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이 채택한 지주회사 방식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는 논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거래소를 (코스닥을 자회사로 두는)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의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상근부회장이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코스닥 분리보다는 거래소를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찬성 / 중소·벤처기업 육성 '골든타임'…독립 땐 투자금 회수 기능 회복
시장이 원하는 맞춤형 서비스 늘어날 것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탄생한 증권시장인 코스닥시장이 내년이면 출범 스무 해째를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코스닥시장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다. 현재 코스닥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코스닥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생태계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기 위해선 모험자본의 투자회수시장인 코스닥시장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최근의 투자활성화 기세를 이어가려면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적기다.
코스닥시장을 독립해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코스닥시장이 모험자본의 투자자금 회수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강력한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이 민간시장에서 반응을 얻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수와 관련 인력도 꾸준히 늘고 있다. 벤처투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투자는 1조6400억원으로 전년보다 18% 증가했다. 올 1분기에는 전년 동기에 비해 29% 늘었다.
벤처기업 수는 올 초 3만개를 넘어섰다. 택?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도 지난해 454개를 돌파했다. 미국, 중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해외 민간투자자금이 유입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기술금융확산 등으로 자금공급 인프라도 대폭 개선됐다.
이렇게 투자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투자금 회수에 목말라하고 있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 않은 탓에 벤처투자자들은 오로지 코스닥시장 기업공개(IPO)에만 목을 매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현행 코스닥시장의 특성상 ‘투자→성장→자금회수→재투자’의 사이클에서 회수시장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둘째, 시장요구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점이다. 코스닥지수가 750선을 웃돌고 부채상환비율요건 폐지, 기술성장기업 특례도입 등 제도개선이 있었음에도 코스닥시장의 서비스 속도와 내용은 시장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창업과 기업 글로벌화를 촉진하려면 △융자금의 투자전환 △기술가치우선 금융 등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안전위주’의 현행 코스닥시장에선 한계가 있다.
셋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도 코스닥시장은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장 좋은 투자자 보호 수단은 유망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상장 문턱을 높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털 등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경영개선을 위해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현재 코스닥시장 수익의 85.5%가량이 상장기업 주식거래와 상장수수료에서 나온다. 많은 기업을 유치할수록 그 실익은 코스닥시장과 임직원에게 돌아간다. 지금 체제보다는 독립된 체제에서 강한 동기부여와 성과 달성이 가능하다.
‘코스닥 독립’은 20여년 전으로 단순히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거래소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선진 코스닥시장으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과거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변화한 환경과 미래요구에 맞는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할 때다. 코스닥시장이 독립하면 벤처기업을 위한 모험자본의 창구역할을 보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벤처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오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반대 / 거래소 구조개편 필요하지만 지주社 전환 방식이 더 효과적
코스닥시장 실패 아냐…해외 선진거래소 참고해야
‘코스닥시장을 한국거래소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촉발한 거래소 구조개혁 논쟁이 뜨겁다. 2010년 이후 코스닥시장에선 기업공개(IPO) 활동이 지속적으로 둔화했고 주가상승도 지지부진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완전히 분리해 유가증권시장과의 경쟁구도를 강화하고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하자는 것이 분리론의 핵심이다. 이런 논리의 기저에는 코스닥시장이 거래소의 보수적인 운영방식 때문에 시장활성화에 실패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코스닥시장을 과연 실패한 시장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 같은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2013년 이후 뚜렷하게 관찰되는 시장의 질적 개선 요소들을 감안하면 코스닥시장은 성숙한 시장으로 발전하는 궤도에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한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거래비중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시장발전을 저해하는 불공정 거래행위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물론 IPO가 활발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IPO가 부진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에 있다. 경제발전 속도가 떨어지면 기업의 성장속도도 느려지고 새로운 투자기회를 포착하기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IPO를 통한 자금조달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거래소의 보수적인 운영방식 탓이 아니라 저성장 기조에 따른 기업들의 수요 감소가 더 큰 원인인 것이다.
거래소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시장환경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정보기술(IT)의 눈부신 발전으로 거래소산업의 진입장벽은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 거래소의 개념도 공적인 인프라 기관에서 IT서비스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참여비중이 늘면서 거래체결 방식이나 상품 수요도 다양화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시장환경 변화는 필연적으로 거래소산업의 구조를 보다 경쟁적인 모습으로 바꾸게 된다. 한국의 거래소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바뀌지 않는다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만큼 구조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거래소 구조개편은 시장운영의 효율화와 글로벌 거래소시장의 지배구조 변화 양상을 고려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운영효율화 측면에서 살펴보자. 거래소 구조개편은 단순히 코스닥시장을 분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인 거래소의 조직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재편해 시장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코넥스시장으로 이뤄진 다층형 시장구조에서 각각의 시장이 유기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선 조직의 전략적 유연성과 기능별 전문화, 부문별 경영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다양한 조직개편안 가운데 지주회사방식이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요소를 확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거래소의 사례에서도 조직구조 선택에 관한 공감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선진거래소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다각화와 수직계열화, 운영효율화 등의 전략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지주회사 방식의 조직구조가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해외 대다수 거래소가 지주회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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