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고리1호기 폐로 옳을까요

입력 2015-06-26 18:33
정부가 최근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1977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07년 30년의 설계 수명을 만료했지만 한 차례 10년 수명 연장이 결정돼 2017년 6월로 1차 계속운전 연장기간이 끝난다. 계속 가동하려면 원자력안전법 등에 따라 만료일로부터 최소 2년 전에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폐지를 결정한 것을 두고 위험성이 높은 노후 원전 폐쇄는 당연하다는 입장과 안전한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원전을 폐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 찬성 “고장이 잦아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만큼 폐기는 당연”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은 고리 1호기의 고장이 잦아 안전성에 문제가 불거진 만큼 추가 연장 없이 폐기한 것은 잘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고리 1호기는 1977년 이후 최근까지 사고 고장 건수가 130건으로 국내 원전 중 가장 많았던 데다 가동정지 일수가 늘어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은 안전한 사회와 원자력 발전이 양립불가하다는 대다수의 열망과 전국에서 탈핵운동을 벌인 수많은 단체와 국민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는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 탈핵은 평화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절박한 호소”라고 강조했다. 천주교 창조보전연대 대표 양기석 신부는 “교회는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기술이 창조세계와 인간생명을 위협하기에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며 “이번 고리 1호기의 폐쇄 결정으로 노후 원전은 폐쇄한다는 원칙적 흐름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산시의회(의장 한옥문)는 양산시민은 물론 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설계 수명이 다한 고리 원전 1호기의 폐쇄는 당연하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는 “환경운동을 30년간 했는데, 고리1호기 폐쇄는 가장 기쁜 소식이다. 2017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즉각 폐쇄를 위해 다시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공명탁 마창진환경연합 공동의장은 “정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폐쇄한다고 하니 기쁘다”며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은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다. 우리는 역사에 남을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강조했다.

○ 반대 “안전성 검증도 안한 폐로 결정은 정치적 부담 때문”

한수원 측은 애초에 2차 연장을 적극 검토했었다. 해외에서는 2차례 가동기간 연장을 통해 70~80년 발전하는 원전이 많다는 게 한수원 측 설명이다. 한수원 측은 원전의 경제성과 더불어 아직 국내 기술과 제도의 미흡으로 원자로 폐기와 해체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점을 들어 계속운전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국회가 통과시킨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에 원전 해체와 관련한 규정이 담겨 있지만, 한수원은 물론이고 원전당국도 한번도 원전을 폐로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술 연구개발(R&D) 등 기초작업부터 닦아야 하는 실정이다.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을 비롯한 반대 측은 우선 계속운전을 신청한 뒤 안전성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더 가동할 수 있는 원전을 안전성 검증도 받아보지 않고 계속운전을 포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결정 권한이 원안위로 넘어갈 경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만 입증되면 월성 1호기처럼 계속운전을 승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다만 정부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폐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해체 기술이 준비가 덜 됐다. 일단 계속 운전을 허용한 뒤 기술이 개발되면 그때 영구 정지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안전성이 검증됐는데도 폐로하기로 한 것은 여론에 떠밀린 정치적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생각하기 “불가항력 기준으로 모든 시설을 갖출 수는 없어”

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사람들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새삼 실감하게 됐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닥칠 경우 원전의 횬活?담보되지 않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는 반핵단체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고리 1호기 폐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의 재앙을 기준으로 모든 산업시설이나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고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게 한국의 사정이다. 그런 불행한 일은 결코 발생하지 말아야겠지만 수도권에 대지진이라도 발생해 수많은 아파트가 붕괴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가정해 아파트를 모두 철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원전의 폐로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력 생산에서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각종 규제가 강화되는 마당에 원전 이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막연히 원전이나 핵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조건 원전은 하나라도 없애고 보자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번 일로 10년 내에 줄줄이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월성1호기를 비롯해 고리 2호기, 고리 3호기의 운명도 불투명해졌다. 모두 폐로한다면 당장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화력발전은 오염 온난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런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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