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급부상·日 재무장·北 핵위협
동북아 소용돌이 한복판의 한국
사회통합·法治확립 기틀 다져야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오늘은 6·25전쟁 발발 65주년이다.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처럼 10단위 기간이 아니어서 주목은 덜 받지만, 그 의미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6·25전쟁이란 ‘열전(熱戰)’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뒤이은 냉전에서는 이겼다. 이것은 남북한 간의 문제를 넘어 ‘세계사적’ 사건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은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선진국에서 바로 승부를 걸 수는 없다고 보고 식민지로 눈을 돌렸다. 그 바탕에는 선진자본주의국가의 번영은 식민지를 수탈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수탈의 바탕을 허물면 선진자본주의도 무너질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1949년 중국 혁명이 성공했을 때 그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흐름은 6·26전쟁에서 중단됐다. 미국은 전쟁에서 ‘비긴’ 후 처음에는 원조로, 다음에는 무역과 개발을 통해 냉전을 수행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그 결과 한국은 30여년간 고도성장을 했다. 이것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레닌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고도성장은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주요인이 됐다. 흔히 공산체제의 붕괴는 1989년 베를린에서 시작됐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1978년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은 1978년 12월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당대회에서 개혁·개방을 추진하기로 함으로써 사실상 공산체제를 포기한 것이다. 중국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을 지켜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것은 베트남 공산정권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이런 얘기는 이제 과거사에 불과하다. 6·25전쟁 후 중국에서 공산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데는 28년이 걸렸지만, 그 후의 기간이 37년이나 된다. 그 사이 중국은 고도성장을 해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됐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이제 일본의 두 배다. 중국은 그런 힘을 바탕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에 대해 일본 지배층은 우경화와 재무장으로 대응하려 한다. 냉전에서 패한 북한은 핵을 들고 버티고 있다.
그런 주변 환경 속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일찍이 냉전 승리의 주역이 됨으로써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절이 지속될 수 있을까. 지각 변동처럼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세계질서를 읽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국내 정치·경제 문제도 그와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 외부 조건의 지각 변동에 대응하는 데는 국내적 결속, 즉 ‘사회통합’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또 하나 고쳐야 할 문제는 ‘정치에 너무 많은 것이 걸리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의 바탕은 무엇보다 정경유착이다. 정경유착으로 특정 세력이 특정 정권으로부터 이익을 보게 되면 그 세력은 정권 유지에 매달리게 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법치(法治)’를 확립하는 문제다. 정권을 잡은 측이 법을 자기 입맛에 따라 운영하면 당연히 다음 정권도 따라 할 것이다. 정권을 잡은 측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정권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된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에는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이 구한말 한국이 망국(亡國)으로 간 길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이나 중국의 공산체제는 바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동양적 전제군주제’가 더 열악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체제는 바로 ‘정치에 모든 것이 걸리는’ 체제다. 65년 전 한국이 전쟁을 통해 지키려 했던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핵심은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한국이 험악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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