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휘감는 달콤한 와인의 향기
야트막한 산에 드넓은 포도밭…'名酒'의 탄생지는 소박했다
'토카이 헤자리아' 와이너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황금색 띠는 스위트 와인 유명
제2의 도시 노비사드
佛 보르도와 같은 자연환경
브라나 등 화이트와인 유명
'神의 물방울'이 익어갈 때, 유럽의 작은 마을은 축제에 빠진다
국경 맞댄 헝가리와 함께
'토카이 와인' 생산지로 유명
매년 9월 전국서 와인 축제
와인이라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고대부터 시작된 와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랜 역사를 품은 와인제국들이 동유럽과 중부유럽, 발칸반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격적인 와인의 역사는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운 BC 6~7세기 신에게 바치는 술로 와인을 사용한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이후 로마가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와인도 함께 번성했다. 하지만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와인을 빚는 주체가 사라졌고, 중세 암흑기에는 수도원에서 와인의 명맥을 이었다. 신에게 바칠 성찬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동로마제국(395~1453)은 긴 세월 중부유럽과 동유럽에 뿌리 깊게 와인의 역사를 아로새겼다. 이들 지역의 각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들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해 ?감미로운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
1. 도나우강 품은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와인 역사는 고대 켈트족이 정착했던 BC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은 로마인이 이곳을 점령해 새로운 품종과 양조법을 전파하기 이전부터 이미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유럽의 다른 와인 산지와 마찬가지로 중세시대 와인 양조는 대부분 수도원에서 이뤄졌다. 20세기 들어서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경제파탄이 이어지면서 오스트리아 와인산업은 몰락했다.
오스트리아 와인이 예전의 명성을 회복한 것은 채 30년도 되지 않는다. 그 계기는 와인 스캔들이었다. 1985년 부패한 소규모 와인 브로커들이 싸구려 와인을 품질 좋고 가격도 비싼 와인인 것처럼 속여 팔기 위해 디에틸렌글리콜(부동액 성분)을 섞어 넣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소문은 전 세계로 퍼져 와인시장을 붕괴시켰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의 뛰어난 와인 생산자들이 오스트리아 와인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북부의 니더외스터라이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와인들이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주목받는 와인 제국으로 부상했다. 니더외스터라이히는 도나우 강이 관통하면서 토지를 비옥하게 했다. 수려한 도나우 강변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 한낮에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서늘한 대지의 품속에서 포도는 잘 영글고 훌륭한 당과 산을 만들어 빼어난 화이트 와인을 빚는 데 한몫했다.
니더외스터라이히에서 생산하는 화이트 와인은 오스트리아 최상의 포도종인 그뤼너 벨트리너로 빚는다. 이 화이트 와인은 균형감이 뛰어나고 복숭아향으로 시작해 폭발적인 후추향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특징이다. 도나우 강변에 숱한 와인 마을과 더불어 한번쯤 들를 만한 와이너리는 크램스 마을과 크램스탈 마을에 있는 살로몬 운드호프, 슐로스 고벨스버스 등이 있다.
2. '토카이'의 나라 헝가리
중부유럽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헝가리는 동유럽 와인 생산국 가운데 가장 오랜 와인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와인산업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고 전통의 맛을 지켜왔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와인은 세계적 명주인 토카이 와인이다. 토카이 와인은 수도 부다페스트 동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보드그로그 강과 티셔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토카이 헤자리아’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위트 와인이다. 인구 1만명의 작은 마을인 토카이는 ‘헝가리의 금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금이 많이 나서가 아니라 이곳에 생산하는 와인인 토카이 와인이 황금색을 띤 데다 금색 마크를 달고 팔리기 때문이다.
야트막한 산을 정점으로 포토밭이 드넓게 발달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이 지역의 토카이 와인은 러시아 제국의 황제들에게 ‘만병통치약’ 또는 ‘생명의 술’로 통했을 정도다. 토카이 와인의 기원은 오스만튀르크의 침입이 잦았던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밭을 관리하던 수도원장은 수확한 포도를 약탈당할까 걱정돼 수확 시기를 11월로 늦췄다. 그랬더니 포도 알갱이에 곰팡이가 피어 쉽게 뭉그러지는 귀부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 포도로 술을 빚었더니 기막힌 천하 명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헝가리 와인의 라벨에는 헝가리 특유의 등급제도인 푸토뇨쉬가 표시돼 있다. 푸토뇨쉬는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담아 운반하는 일종의 등짐 바구니다. 이를 아라비아숫자로 표시해 술의 숙성과 질의 상태를 보여준다. 3푸토뇨쉬는 대략 5년 정도 숙성한 것이고 최상급인 6푸토뇨쉬는 8년간 오크통에서 숙성했음을 뜻한다.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바구니에 담아 그대로 며칠 말린 뒤 당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용기에 즙을 받아 정상적인 포도로 만든 기초 와인과 한데 섞어 토카이 와인 특유의 맛을 얻는다.
헝가리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와인 산지는 에게르다. 토카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레드 와인이 이름 높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300㎞ 거리에 있다. 헝가리 최남단 빌라니도 레드와인 명산지다.
토카이와 에게르에는 이름난 와이너리가 즐비하다. 이 중에서 한두 군데를 꼽는다면 토카이 마을에서는 샤토 데레술라와 파트리쿠스 와이너리, 에게르에선 투메레르 와이너리가 있다.
3. 숨겨진 와인 강국 세르비아
세르비아 와인은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나라 見㎲뗏?익숙하지 않으니 그 나라 와인은 더욱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르비아를 여행하면서 와인의 질에 새삼 놀라고 말았다. 와인의 맛은 풍부하고 유럽의 어떤 와인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우아하다.
중부유럽에 있는 세르비아는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2세기께 이미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와인의 역사는 유구한 편이다. 세르비아산 와인이 우수한 것은 북위 45도선상에 몰려 있는 프랑스의 보르도나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같은 유럽의 다른 명산지와 흡사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공산체제에서 와인 양조가 금지되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세르비아는 세계 와인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적 향기가 넘치는 세르비아 제2 도시인 노비사드에 가면 주변 유적지와 와인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노비사드는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75㎞ 북쪽에 자리 잡은 역사적 도시다. 다뉴브 강가의 수려한 경관이 펼쳐지는 이곳은 오스만튀르크와의 지루한 전쟁이 끝난 뒤 ‘카를로비츠조약’이 맺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와이너리는 이 근처에 산재해 있다. 세르비아 와인 산지는 국토의 거의 전역에 걸쳐 분포해 있다. 북쪽의 수브티카 호르고스를 비롯해 동쪽에 티모크, 남쪽에 코소, 중앙에는 수마디야 대 모라바 지역까지 와인을 생산한다. 세르비아 토착 와인으로 화이트와인은 프로쿠파츠와 브라나가 있고, 레드와인은 스메데레브카, 크르타츠 등이 유명하다.
4. 와인 페스티벌의 나라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의 대표적인 와인은 토카이 와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토카이 와인을 헝가리의 명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이 와인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두 곳에서 생산된다.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은 토카이라는 소도시에서 생산되고, 슬로바키아에서는 말라 트리나 마을에서 난다.
토카이 명주가 두 나라에 걸쳐 생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슬로바키아가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에서도 켈트족이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이후 로마인들이 들어와 본격적인 와인 양조를 시작했지만 13세기 타타르족의 침공으로 국토가 황폐해지면서 더 이상 포토밭을 경작하지 못했다. 15세기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토카이와 말라 트리나 마을에 정착하면서 전설적인 토카이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말라 트리나의 토카이 명가로는 마치크 와이너리가 있다. 가족 경영으로 대를 이어온 이 와이너리에서 빚어낸 와인들은 와인 시음대회에서 빠짐없이 상을 받는다.
매년 포도 수확철인 9월이면 슬로바키아 와인 페스티벌이 여러 도시에서 열린다. 이 페스티벌은 ‘완성품 와인’이 아니라 슬로바키아어로 브루치아크라고 부르는 음료를 마시는 축제다. 새로 수확한 포도를 눌러 짜 주스로 만든 것을 머스트라고 하는데, 여기에 누룩(이스트)을 넣으면 발효가 시작되고 포도에 들어 있는 과당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알코올 농도가 4% 정도 됐을 때 사람들이 마시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브루치아크다.
좋은 와인 고르는 팁
원산지에 따른 와인 고르기
지구상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들은 크게 구세계와 신세계로 나뉜다. 앞의 것에 해당하는 국가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이고 미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남아공, 동유럽의 일부 나라가 신세계에 속한다. 구세계 와인은 가격이 비싼 반면 품질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가격으로 와인 고르기
와인의 품질은 가격에 연계돼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가격은 와인의 질을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대형마트나 와인 숍에서 신세계 와인 중 3만원 미만의 와인을 고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레스토랑에서는 5만원 정도의 와인을 주문하면 품질은 보장된 셈이다.
레이블을 통해 와인 고르기
와인의 레이블은 그 와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일단 와인이 양조된 해, 즉 빈티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레드 와인은 구매 시점에서 3~5년 기간에 드는 빈티지가 가장 좋다. 화이트 와인은 2~3년 이내의 것이 적당하다.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고르고자 할 때는 레이블에 표시된 와인의 등급, 품계를 참고함이 좋다. 또한 품종으로도 와인을 고를 때 좋은 팁이 된다.
와인 유통업체의 브랜드에 의한 선택
와인을 들여오는 수입 업체는 와인 유통을 담당한다. 이들 업체 가운데 특별하게 품질이 좋은 와인을 들여오는 신뢰가 가는 브랜드의 업체들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 유통업체가 들여오는 와인을 선택의 잣대로 활용할 수 있다.
최훈 와인리뷰 발행인 ire-ch@hanmail.net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