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호의 로봇 이야기 (1) 재난 구조에 나선 로봇
차 운전·계단 오르기 등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3년 만에 임무수행…'끝없는 도전'이 만든 성과
오준호 < KAIST 기계공학과 특훈 교수·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 >
이달 초 미국에서 세계재난로봇대회가 열렸다. 미국 국방성 산하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원자력 재난사고 상황에서 초기 임무를 수행할 로봇을 개발하고자 마련한 대회다.
국가의 명예와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35억원이 넘는 상금이 걸려 있다 보니 출전팀 면모도 화려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 연구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무인 탐사우주선을 개발하는 제트추진연구소, DARPA가 개발을 직접 지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로봇,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 일본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와 도쿄대 연구팀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정도면 현존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회장에서 벌어진 광경은 앞서 풀어놓은 거창한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 수십~수백억원을 들여 개발한 로봇들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해 비틀대며 주저앉거나 경사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나자빠지길 반복했다. 대회 2위를 차지한 팀도 몇 번씩 넘어지며 고전을 면치 못했을 정도니 하위 팀들이 겪은 수난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저 로봇들이 인류를 재난에서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가 뛰어들어가서 넘어진 로봇을 구해줘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 TV에서 보던 걷고 뛰고 층계를 오르고, 춤을 추는 완벽한 모습의 인간형 로봇이 아니었다. 연출된 환경에서의 모습과 실제 상황에서의 적응 능력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이 모습이 인간형 로봇 개발의 현주소인지 모른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제 겨우 신생아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인간형 로봇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기까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신생아가 성인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DARPA가 대회 개최를 선언한 2012년만 해도 운전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전동 공구를 다루고, 계단을 오르는 로봇은 세상에 없었다. 대회에 대한 설명을 들은 공학자들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말이다. 그런데 2015년, KAIST의 인간형 로봇 ‘휴보’는 모든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긴 기술을 3년 만에 완성 궤도에 올려놓은 것이다.
대회장에서 로봇들은 수없이 넘어졌다. 실수이고 실패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넘어진 로봇이 일어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대회 공식 명칭은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ARPA Robotics Challenge)’다. 경쟁하고 이겨야 하는 ‘competition’이 아니라 도전 그 자체의 가치를 높이 사는 ‘challenge’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수준의 로봇들이 재난 현장에서 완벽한 임무를 수행하기까지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상상해보라! 이런 연구가 수십 년간 이어졌을 때 얻어질 미래의 성과들을 말이다.
■ 세계 재난로봇대회 우승 이끈 오준호 교수
2004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휴보’를 개발했다. 이후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간형 로봇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재난로봇대회에 KAIST·레인보우(교내 벤처기업) 연구진 20명과 함께 참가해 30년 먼저 로봇 연구를 시작한 미국, 일본 연구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오준호 < KAIST 기계공학과 특훈 교수·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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