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끝) 말로만 규제개혁…신뢰 잃은 금융당국
사라지지 않는 관행
절차 없이 공문 발송하고 금융상품 사전 심사 여전
위반해도 제재 없다지만 금융사는 눈치보기만
[ 이유정 기자 ] ▶마켓인사이트 6월19일 오후 3시58분
국내 한 대형 자산운용사는 올해 초 페트로차이나 등 우량 중국 회사채를 담은 중국채권펀드를 출시했다. 우량 기초상품이 많은 만큼 투자자에게 고지하는 위험등급을 3~4등급으로 부여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국 채권은 위험등급을 높여야 한다”는 금융감독원의 지침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부여하는 높은 신용등급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운용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최고 위험등급인 1등급으로 펀드 등록을 마쳤다. 이 펀드의 판매 실적은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다.
○곳곳에 금감원 그림자
금감원은 투자자 보호가 중요한 문제였겠지만 위험도는 자산운용사가 먼저 측량하고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국내 운용사가 출시하는 모든 공모펀드는 사실상 금감원의 재가를 받아야 구조를 최종 확정할 수 있다. 법적 근거는 없지만 펀드를 등록해야 하는 ‘을(乙)’의 입장에서 금감원의 의견은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7월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같이 숨어 있는 규제는 2000건에 달한다. 법령에 근거해 관리하는 명시규제의 두 배 수준이다. 헤지펀드 모범규준, 자산운용사 고유재산투자 가이드라인 등 모범규준·행정지도·협회내규·구두지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금융상품을 출시할 때 사전에 적격 여부를 심사하거나 당국 실무자 재량으로 심사 요건을 추가해 펀드 등록 등을 지연시키는 관행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증권사가 주가연계증권(ELS)의 투자자 청약을 받을 때 증권신고서의 투자자 청약 시기를 결정하는 문제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애초 금감원은 신고서 접수 이후에 상품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 신고서 접수 다음날부터 청약받도록 지도해왔다. 문서화되지 않은 구두지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강제 규제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올해부터 청약 여부를 증권사 자율로 결정하도록 변경했다. 그럼에도 옛 기준을 강요하는 ‘창구지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규제를 자율화한 이후에도 금감원은 여전히 접수 당일 청약하지 않도록 구두지도를 하고 있다”며 “‘위반을 해도 제재하지 않겠다’고 얘기하지만 등록과 조사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금감원의 말을 듣 ?않을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방치되는 시장발전 방안
법령규제의 그늘도 여전히 깊게 드리워져 있다. 고객예탁금을 일률적으로 증권금융에만 예치하도록 규정한 것을 포함해 레버리지(차입)비율 산정 방식, 고객에게 담보로 받은 주식을 증권회사가 주식대차거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등 증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증권사와 저축은행 간 연계 영업, 투자 경험이 있는 고객에 대한 설명의무 차등 적용 등 영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또 고객예탁금 규정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점구조 때문에 증권사가 예치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해 운용 전략을 다변화하고 금리를 합리화할 수 있는 길을 막는다는 비판이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구두지도 등 비명시적 규제는 실무자에 따라 규제 내용과 강도가 달라지는 등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본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행정지도는 반드시 문서화·공식화해 규제를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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