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3) 경합이론과 대입 수능
'대학입시 소모전' 매년 되풀이돼
사회가 치르는 비용도 해마다 커져
정부 주도로 시행하는 대학입시
대학별 자율에 맡겨 낭비 줄여야
해마다 11월 초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입 관련 뉴스가 언론을 장식한다. 수능 문제에서 오류라도 발견되면 큰 소동이 벌어진다. 지난해 수능에서는 세계지리 문제에서 오류가 발견됐고 올해는 영어·생물Ⅱ에서 복수정답이 인정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분별력이 없는 ‘물수능’ 논란으로도 꽤나 시끄러웠다. 수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이다.
현행 수능과 대입 경쟁은 고든 털럭이 일찍이 분석한 소모적인 ‘지대추구경합(rent-seeking contest)’의 전형이다. ‘가족단위’로 자원을 투입해 상(賞)을 차지하기 위해 매달리는 치열한 경합(競合)이다. 수능의 상은 상위권 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며 이는 나중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등으로까지 이어진다. 승자가 차지하는 상이 크므로 대입 경합에는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며 그만큼 낭비도 심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 조사 결과 한국의 한 해 사교육비 규모는 약 18조6000억원을 헤아린다.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이것도 실제보다는 적게 추정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이 보통 GDP의 0.5% 정도를 사교육비로 쓰는 데 비하면 지나치게 비중이 크다. 이처럼 엄청난 돈을 사교육비로 쓰는 것은 학벌이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직업으로 이어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미래에 커다란 지대(地代·rent)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즉, 대입 경쟁은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지대추구 경쟁’인 것이다. 물론 사교육이 학생의 지적 능력을 키우고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사회가 치르는 비용이 너무 크다. 이런 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입제도 개선이 논의돼야 하며, 그 첫걸음으로 수능이 변질된 과정과 목적 등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수능은 한국 역사상 가장 공정하게 출제, 평가되는 시험으로 여겨진다. 수십년 전에는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입학시험을 봤는데 문제의 출제와 채점 및 관리 수준은 지금 수능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조선시대 국가시험인 과거(科擧)도 문제의 출제, 평가, 시험 진행 등에 문제가 많았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에게 답안지를 대신 쓰게 하거나 대리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심부름하고 음식 장만하는 하인들까지 시험장에 대동했기에 시험장은 난장판에 가까웠다. 대동과(大同科)는 왕이 친히 참관하는 과거로 2시간 동안 시험을 보고 당일에 채점을 끝내 합격자 ?발표했다. 당연히 응시자는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테고 채점 또한 정교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운이 좋으면 붙을 수도 있기에 ‘행과(倖科)’라고도 불렸다. 숙종 20년(1694년)에는 1만여명이 응시했고, 영조 15년(1739년)에는 1만7000명이 응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험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관리 차원을 넘어서 수능 자체와 대입제도 전반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대입경합이 지대추구경합의 성격에서 벗어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관리 차원의 개선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각종 이익집단의 이익이 반영되면서 시험의 성격이 변했고 갈수록 자원 낭비를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당초 수능은 ‘대학 교육 수학에 필요한 학업 적성을 측정하기 위해 통합교과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춰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각 교과목 공급자들(교사 및 교사 양성 학과)의 이익이 반영되면서 과목 수가 늘어나더니 결국 모든 과목이 수능에 포함됐다. 학생들은 ‘교육공급자의 이익’을 위해 없는 자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교육당국의 정치적 계산도 수능을 왜곡시켰다. 교육당국은 수능을 쉽게 출제해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착각에 빠지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어려운 이슈, 예를 들면 강남권과 비강남권, 일반고와 특목고 간 학업 격차 등의 문제를 감추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남권과 특목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학생들의 실력차가 잘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은 회사가 자신의 손실을 감추려는 ‘분식회계’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수능이 해야 할 일은 학생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쉽거나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정확하게 실력을 평가하는지 여부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수능을 ‘자격시험화’하면 수능 준비에 들어가는 자원은 조금 줄어들겠지만 결국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즉, 수능 이외의 다른 부문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므로 실익이 없을 것이다. 수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선별기능을 약화시킨다면, 결국 다른 선별기능이 필요하게 된다. 대학들도 본고사를 보거나 다른 영역을 통해 수험생을 선별해야 할 것이다. 대학별 본고사는 비용이 더 들어가는 해결책이다.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더 크다. 내신과 비교과영역을 기반으로 선별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결국 추가적인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애매한 영역을 통한 선발은 공정성 시비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결국 자격증 개수나 봉사시간 등 계량화가 가능한 영역을 통해 선별이 이뤄지게 되며, 이는 자원 소모전의 전선을 넓히게 될 뿐이다. 독일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전쟁의 승기를 잡으려고 전선을 확장하고 결국 참호전으로 지루하게 살상전을 이어간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대학입시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성과 개입의 정도에 대한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대학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기고 정부의 역할은 공정성에 대한 감시와 평가에 그쳐야 할 것이다.
시험은 싫더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물론 실패자에게 패자부활전을 가능케 하고 다양한 경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사회 豁섟?고민해야 한다. 수능 및 대입제도의 개선방안을 공급자(교육계 및 교육정책당국)에게만 맡기지 말고 사회 전체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익집단들의 사익 추구를 최대한 억제하고 지대추구경합에 낭비되는 자원을 줄여 생산적 활동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상학 <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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