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메르스에 농락당한 한국, '보건 안보' 개념부터 갖자

입력 2015-06-18 20:46
신종 감염병은 단순 保健 아닌 '복합위기'란 인식 중요
보건부를 복지부서 독립…질병관리본부 기능 강화해야
생물테러 대비하고 의사·수의사 간 소통채널도 열어야

"전염병 및 생물테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응급실증후군 감시체계를 효율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조성권 < 한성대 행정대학원 교수 >


21세기 전염병과 생물테러

인류는 20세기 들어 전염병(감염병)을 새로 인식하게 됐다. 19세기 세균에 이어 1930년대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다. 1970년대 들어선 전염병을 거의 정복했다고 판단했다. 현대의학 발달로 중대 위협이던 소아마비, 홍역, 볼거리, 백일해, 파상풍 등의 항생제와 백신을 개발한 데 따른 것이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했다고 선언했을 때 인류는 질병에서 해방됐다고 확신했다. 이듬해 유엔 총회는 전염병은 더 이상 인류에 중대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산이었다. 최근 40여년 동안 40종 이상의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2000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세계 약 5400만명의 사망 요인 가운데 25~33%를 전염병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면서 글로벌 차원의 전염병 위협을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보건 안보’라는 개념도 처음 제시했다.

전염병에 취약한 한국

신종 전염병은 기후 변화를 비롯해 세계화·도시화, 야생동물과의 접촉, 병원체 자체의 유전자 재조합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겨났다. 항공 발달로 전염 병원체의 이동 속도도 빨라졌다. 도시화에 따라 인구밀도가 높아져 병원체의 확산 압력과 이동성도 증가했다.

변종 바이러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대체로 치사율이 높은 것은 확산력이 상대적으로 낮고, 치사율이 낮은 것은 확산력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미래에 높은 치사율(H5N1)과 빠른 확산력(H1N1)을 가진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 이게 대유행(pandemic)하면 최악의 경우 세계적으로 7100만명의 사망자와 3조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낼 수 있다는 게 세계은행의 추산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글로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원지라고 불리는 광저우를 품은 중국에 인접해 있다. 또 대륙과 해양을 잇는 물류 교통의 중심지다. 도시화로 인한 인구밀집도가 높고 교통이 발달해 전염병이 퍼질 경우 그 확산 속도도 매우 빠르다. 더구나 북한과 정치·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매년 북한의 가상 생물테러 시나리오에 따라 정기적 공조 훈련을 실시한다. 생물테러가 발생하면 전염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아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 없다.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인재(人災)다. 한국 의료 시스템과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만성질환에 해당될 뿐 지금처럼 급성 전염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독립 ‘보건부’에 실질 권한 줘야

컨트롤타워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 보건을 담당하는 제2차관직을 신설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은 ‘복지’에 종속적이고 우선순위가 밀렸다. 질병관리본부는 항상 후순위다. 독립적인 보건부를 창설하고, 전염병과 미래 생물테러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정적 권한을 보장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인원은 1만5000여명, 예산은 66억달러(약 7조2600억원, 2015년)에 이른다. 한국을 미국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2014년 에볼라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본부의 전문 인력이 부족해 관련 직원들이 수개월 동안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지금도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은 잠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보람된 일을 하도록 인력 보충과 함께 그에 걸맞은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

‘복합위기’ 사전 탐지가 관건

전염병을 예방하는 차원의 사전탐지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전문가를 양성하고, 관련 매뉴얼을 보완하면서 가상 시나리오에 따라 주기적이고 실제적인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 전염병 및 생물테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응급실증후군 감시체계를 효율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는 현장 의사와 질병관리본부 간의 실질적이면서 상설화한 정보교류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미국은 생물테러 조기 탐지 및 경보를 위해 ‘실시간 발발-질병감시’를 시행하고 있고, 응급실증후군 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보건 및 역학 전문가 양성도 시급한 문제다. 대부분 의대생은 대형병원 근무를 선호한다. 경제적 수익이 낮은 공중보건의사 지원율은 낮다. 공중보건 전문가는 주로 2년제 전문대학 졸업생이 지원하고 있다.

미래에는 수의사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많은 역학 전문가는 가까운 미래에 인류에게 위협적인 전염병들은 대부분 야생동물에서 기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질병의 조기경보 시스템에서 국가는 공적 보건기관과 사적 비즈니스 기관의 상호 협력은 물론 의사와 수의사 간 정규적 소통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전염병에 대한 획기적 인식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자연재해든 전염병이든 위기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염병은 단순한 보건 문제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심각한 영향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복합위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염병은 식량과 농촌, 수자원, 환경안보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가까운 장래의 생물학적 인자 감염에 대한 ‘복합안보’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질병을 단순히 ‘현미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확대경’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조성권 < 한성대 행정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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