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동산 감정평가사의 도덕적 해이 문제

입력 2015-06-18 20:37
부동산 감정가를 뻥튀기하는 등 비위나 비리를 저질러 정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감정평가사가 최근 5년간 무려 22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통해 드러난 내용이다. 감정평가사 3600여명 가운데 6%를 넘는 것으로, 다른 전문직 업종에 비해 징계받은 비중이 매우 높다.

이번에 확인된 감정평가사들의 비리는 사뭇 충격적이다. 자격증을 불법으로 빌려주는 것은 물론 감정가를 제멋대로 부풀리는 케이스가 즐비했다. 한 감정평가법인은 2013년 5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178억원의 자산을 355억원이라고 감정했다. 감정평가 기준인 표준지 공시지가 기준 평가원칙을 배제하고, 오히려 의뢰인이 제시한 평가조건을 그대로 수용해 감정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고급아파트 한남더힐의 분양전환 소동에선 전세보증금만 29억원에 달하는 복층식 가구의 감정평가액이 27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분양 전환가격을 낮게 평가해달라는 청탁을 받은 감정평가사들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런 부정을 저질러도 주로 견책이나 경고 주의에 머무르는 솜방망이식 처벌 결과가 비위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5년간 감정가를 부풀리는 ‘고무줄 감정’을 하다 적발된 11건에서 자격이 취소된 경우는 고작 3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비리 감정평가사에 대한 영구퇴출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감정평가는 부동산 거래의 출발점이자 대출과 과세의 기준이 된다. 경제활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기초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비단 감정평가사의 문제만도 아니다. 법을 지키지 않는 변호사들은 갈수록 늘고 있고 일부 세무사 회계사들은 탈세를 부추기고 있다. 사회 지도층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시스템이 시급하다. 전문가 집단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면 신뢰사회는 엉망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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