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이팅게일

입력 2015-06-18 20:3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크림전쟁(1854~1856년) 당시 목숨을 잃은 영국 군인은 2만여명이었다. 전사자가 5000여명이었고, 나머지 1만5000여명은 병사자였다. 총포에 의한 현장 사망자보다 부상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후방 사망자가 세 배나 됐다.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간호 봉사대를 조직해 급파했다. 나이팅게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동화에나 등장하는 ‘백의의 천사’가 아니었다. 흰색이 아니라 짙은 색 옷을 입고 피투성이 막사를 헤집고 다녔다. 부상병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고위 관료들을 설득해 긴급한 약과 위생품을 구비했고 무질서한 치료 과정을 규율적인 시스템으로 정비했다. 중환자를 격리해 별도로 관리하는 집중치료실 개념도 도입했다. 후대 연구자들은 그를 유능한 행정가이자 협상가로 평가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긴급한 상황을 헤쳐나가고 꽉 막힌 남성 중심 조직의 벽을 뚫으면서 그는 환자 사망률을 42%에서 2%로 떨어뜨렸다. 기적이었다. 그의 별명이 ‘등불을 든 여인’이었다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몇 년 뒤엔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세우고 간호전문 서적도 집필했다. 미국 남북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땐 고문으로 활약했다. 영국 여성 최초로 공로훈장까지 받았다.

이처럼 간호사는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직업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면서 감염에 따른 위험도 큰 분야다. 근무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날마다 교대근무를 해야 하니 한 달에 열흘이 밤샘이다. 돌봐야 할 환자 수도 많다. 그래서 취업 1년 이내에 그만두는 경우가 30%나 된다. 고령화사회가 되면 수요가 늘어 간호사 인력이 더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거꾸로 보면 고용전망은 그만큼 밝다. 고되더라도 취업 가능성이 높으니 매년 유망 고용 분야에 먼저 꼽힌다. 정부가 추진하는 포괄간호서비스 제도가 2018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면 추가로 필요한 간호사가 6만5000명, 간호조무사가 5만5000명에 이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12만여명이니 엄청난 규모다. 일자리를 잃은 간병인들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일거양득의 고용 대책이다.

서울 코엑스에서 닷새동안 펼쳐지는 세계간호사대회에 135개국 간호사 2만여명이 참가했다.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왔다. 발표하는 논문만 400편이 넘는다. 한국 간호사 유니폼 고증쇼와 한복 패션쇼도 열린다. 백의의 천사가 컬러의 천사로 바뀌었듯이, 간호사에 대한 세계의 인식도 함께 변하길 기대해 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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