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어제 금융규제 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보텀 업 방식’의 현장점검반과 별도로 ‘톱 다운 방식’의 금융규제개혁 작업단을 구성, 금융규제를 전수조사해 풀 수 있는 것은 연내에 모두 풀겠다고 한다. 법령, 감독규정, 시행세칙 등은 물론 명문 규정이 없는 행정지도, 모범규준, 가이드라인 등 이른바 그림자규제까지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규제 때문에 일 못 하겠다는 얘기는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임 위원장의 규제개혁 의지는 모르지 않는다. 허황된 금융허브 같은 거대담론에 빠지지 않고 취임 직후부터 금융회사 실무진을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발표는 이미 귀에 익은 것이 대부분이다. 금융위·금융감독원 실무자들이 딴짓을 못 하게 금융규제 운영규정을 만들어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겠다는 게 새로워 보이는 정도다.
임 위원장의 전임자들이 규제개혁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 규제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규제 찾기라면 금융당국 실무자 책상 서랍만 열어봐도 충분할 것이다. 규제를 푼다면서 다른 쪽에선 암덩어리 규제를 만드는 것이 문제다. 주주권을 침해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시행된 데 이어, 5억원 이상 임원보수 공개 가이드라인에다 제2금융권 CEO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쇠사슬’을 새로 만들면서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무슨 금융회사의 종합 컨설팅업체인 양 경영과 영업에 간섭하는 게 상례화돼 있다. 그저 50%였던 것을 20%로 낮추는 정도를 규제완화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의 가격과 수수료를 자율화하겠다지만, 이 역시 당국이 만든 것이다. 근본문제를 방치해놓고는 금융개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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