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향수 브랜드 조말론 키운 조 말론 창업자
영국 상류층이 애용하는 브랜드
작약·사과·블랙베리·오이 등 흔치 않은 원료 사용해 차별화
모델·가수 등 입소문 마케팅…자신의 이름 브랜드화 대성공
향기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다
암 진단받고 한때 사업 접었지만 향수에 대한 미련 계속 남아
재능 발견한 런던 꽃가게 자리에 '조러브스' 매장 열고 새 도전
[ 나수지 기자 ]
2011년 5월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결혼식 날. 윌리엄 왕세손은 신부에게 커다란 바구니를 선물했다. 안에는 조말론의 향초와 향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조말론은 영국 상류층이 애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영국에서 고급 주택가에 가고 싶다면 조말론 매장을 찾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작약 사과 블랙베리 오이 얼그레이 설탕 재스민 등 향수에서 흔히 쓰지 않는 원료를 사용해 자연스럽고 고급스런 향을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엌에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해 조말론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운 사람이 있다. 조 말론(51). 브랜드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타고난 재능 살려 조말론 창업
‘행복한 향’을 낸다는 조말론 향수지만, 창업자 조 말론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난독증을 앓았고 가정도 화목하지 못했다. 피부관리사였던 어머니는 그가 14세 되던 해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미술가 아버지는 가족을 등진 채 도박을 즐겼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과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말론의 몫이었다. 그해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말론은 이때를 돌이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번 돈 모두를 먹는 데 쓰고, 내일은 먹을 것이 없을까봐 걱정하는 삶이었다.”
성공에 목말랐던 말론은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16세에 고향인 켄트에서 런던으로 이사했다. 런던 엘리자베스 거리에 있는 작은 꽃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꽃가게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미용 관련책을 읽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만들던 미용 크림 제조법을 익혔다. 그녀는 이때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말론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색깔에서 향기를 맡고 사물을 향기로 표현할 수도 있다. 60~80개에 이르는 향을 테스트하면서도 언제 향이 완성됐는지 알 수 있다”고 자신의 재능을 설명했다.
말론이 화장품을 팔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그는 여성 고객이 화장품을 구입하러 오면 감사 표시로 너트맥 앤드 진저 목욕용 오일을 작은 병에 담아 선물했다. 목욕용 오일은 금세 입소문이 퍼졌다. 몇 년이 지나자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수백 병의 목욕용 오일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오일을 만드는 일상이 반복됐다. 부동산 감정사로 일하던 남편 개리 윌콕스는 말론의 재능에서 사업 기회를 봤다. 1994년 10월. 조말론은 첼시 월튼 154번가에 첫 가게를 열었다.
“브랜드가 내 이름…2등에 만족하지 않았다”
호기롭게 매장을 열었지만 사업에는 변수가 많았다. 첫 매장을 연지 한 달 만에 말론은 몇 달 동안 상점을 닫아야 했다. 사건은 그의 생일인 11월5일에 벌어졌다. 말론은 VIP 손님들을 가게로 초대했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목욕용 오일도 조명이 잘 비치는 매장 선반 위에 올려둔 상황이었다. 파티 도중 손님들에게 선물할 목욕용 오일 뚜껑이 전부 폭발하듯 열렸다. 전날 남편이 오일 병을 가득 채우지 말라는 말론의 경고를 무시하고 병을 가득 채워둔 탓이었다. 오일은 열이 가해지면 팽창하기 때문에 병 안에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 일로 안전상의 문제가 불거져 조말론 매장은 휴업해야 했다.
어려움을 겪고 다시 연 말론의 매장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브랜드가 곧 내 이름이었기 때문에 제품이 곧 나 같았다”며 “절대 2등에 만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품질 좋은 조말론의 향수와 목욕용 오일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패션잡지 보그,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조말론을 다뤘다.
1998년엔 뉴욕의 유서 깊은 백화점인 버그도르프굿맨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다.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도 따로 없었다. 처음 목욕용 오일이 유명해졌을 때처럼 입소문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말론은 뉴욕에 매장을 열기 전에 모델, 가수 등 50명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10개씩 제품을 선물했다. 집들이 선물로 사용해달란 말과 함께였다. 친구들에게는 조말론 쇼핑백 200개를 나눠주고 거리에 들고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사람이 걸어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한 셈이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말론은 사업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회사 경영과 제품 개발을 동시에 소화하기는 역부족이란 판단이었다. 그는 파트너로 미국의 화장품 제조업체인 에스티로더를 점찍었다. 1999년 조말론을 에스티로더에 매각했다. 정확한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수백만달러로 추정되는 거래였다. 말론은 이후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향기가 그리워”…‘조러브스’로 새출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3년 말론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뉴욕에서 1년간의 항암치료 후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네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2006년 에스티로더에 자신의 모든 지분을 매각하고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말론은 이때를 회상하며 “매일 같이 일어나자마자 향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에스티로더에서 손을 떼면서 5년 동안 동종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동의했기 때문이다. 약속한 기간이 끝난 2011년 말론은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10월 말론은 꽃가게 점원으로 일했던 런던 엘리자베스 거리 매장 자리에 조러브스라는 이름의 매장을 열었다. 말론은 조러브스를 연 뒤 인터뷰에서 “내게 주어진 재능에 충실해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며 “이것이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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