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리콘밸리와 선전, 그리고 서울

입력 2015-06-11 20:34
실리콘밸리와 선전은
자생적 기술 발전과 함께
정부의 장기 지원 뒷받침
단기 성과만 바라면 금물

고산 < 에이팀벤처스·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 hardtodecide@hotmail.com >


미국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혁신의 아이콘이다. 민간 주도형 창업 생태계가 정착한 대표적 지역이라 각국 정부의 연구·모방의 대상이 돼 왔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동부 보스턴 인근의 ‘루트(Route) 128’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파생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이곳에 독일군의 항공전력에 대항할 군사·전자통신 기술연구소를 만들었다. 당시 이 연구소의 무선통신 기술개발은 프레데릭 터먼이 소장으로 재직 중이던 하버드 무선연구소에서 진행했는데, 1944년 터먼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공과대학장으로 임명되면서 하버드대 연구소의 인력 다수를 스탠퍼드대로 영입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씨앗이었다.

종전 후에 미국과 옛 소련 간 냉전 체제가 굳어지면서 미국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 자금을 이들의 연구에 투입杉? 터먼은 이 같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스탠퍼드공대의 수준을 크게 높였고, 이는 대학 인근 지역이 현재 모습의 실리콘밸리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이후 벤처투자자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실리콘밸리는 기술 창업의 메카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의 자유롭고 혁신적인 창업 환경은 수십년간 이어진 정부 투자로 쌓인 연구 성과와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부 주도로 스타트업을 뽑아 미국 투자자들에게 사업 내용을 발표할 기회를 주거나, 현장 견학을 시키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물론 긍정적 효과도 있었겠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에 돈을 주고 스타트업을 입주시키는 것은 뭔가 모양새가 이상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 비슷한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선전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내 여러 기관에서 앞다퉈 선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아마 ‘실리콘밸리 러시’에 이어 ‘선전 러시’도 곧 있을 것 같다.

좋은 사례를 배우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겉모습이 아닌 핵심을 주체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고산 < 에이팀벤처스·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 hardtodecide@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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