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해파리

입력 2015-06-11 20:32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해파리를 해타(海) 즉 바다메기라고 표기했다. 속어로는 해팔어(海八魚)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설명도 실감난다. “머리와 꼬리, 얼굴과 눈도 없다. 몸은 연하게 엉기어 있고 모양은 중이 삿갓을 쓴 것 같고, 허리에 치마를 입어 다리에 드리워서 헤엄을 친다. 삶아서 먹거나 회로 먹는다.”

해파리는 해파리아문에 속하는 무척추동물의 총칭이다. 마이크로미터 크기에서부터 2m가 넘는 것까지 다양한데 4개목과 200여종이 있다. 서양에서는 젤라틴 성분이 많은 고기라는 뜻으로 ‘젤리피시(jelly fish)’라고 부른다. 근구해파리 목에 속하는 85종이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데 12종이 양식되고 있다.

해파리는 번식력이 좋은 데다 천적까지 거의 없어 세계 곳곳 바다에서 골칫거리다. 2007년 북아일랜드에서는 해파리가 수십㎢의 해역을 온통 뒤덮어 양식 연어 10만여마리가 폐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해파리가 세계 바다를 뒤덮을지 모른다는 ‘해파리 지배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연구결과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해파리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용존산소량이 4ppm 이상이 돼야 살 수 있는 일반 어류와 달리 해파리는 1ppm만 돼도 살 수 있다. 오폐수 증가와 온난화 등이 오히려 해파리에겐 유리한 환경조건인 셈이다.

수명은 2~4주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1년 넘게 사는 종도 있다. 1990년대에는 영생하는 해파리를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발견해 화제가 됐다. 학명이 투리톱시스 누트리쿨라인 이 해파리는 크기가 4~5mm로 아주 작은데 죽을 때가 되면 다시 애벌레 상태로 돌아갔다가 이틀 만에 깨어나 회춘한다고 한다. 줄기세포를 활용해 젊음을 되찾게 하겠다는 연구도 이 해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신기한 동물 해파리는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와는 악연이다. 한반도 주변 수온이 급속히 올라가면서 자주 출몰해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012년 해파리에 쏘여 119수상구조대에서 치료를 받은 피서객이 부산에서만 1594명에 달했다. 2001년 8월에는 경북 울진 원자력발전소 1, 2호기의 취수구를 해파리 떼가 막아버리면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가 올해는 해파리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해파리 피해대책본부’를 예년보다 앞당겨 이달 중순부터 가동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잡아서 팔면 되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식용은 제한돼 있다. 오히려 못 먹는 큰 것들은 200㎏이 넘어 그물만 다 망친다고 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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