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사라지는 고교 물리·화학 실험실…국제대회 입상 300명 중 한국학생 4명

입력 2015-06-10 19:21
수정 2015-06-11 05:46
과학교육 실태와 개선안

학생 선택권 강조하다보니 수학 등 어려운 과목 기피
논리적 사고 키우는데 소프트웨어 교육이 도움


[ 오형주 기자 ]
“일선 고교에서 물리·화학 실험실이 점점 사라지고 가르칠 교사도 부족해지면서 어느 학교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배우는 과목이 달라진다고 합니다.”(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문·이과 통합은 교육전문가의 손에서 벗어나 사회 및 산업계에서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 2015 ‘바람직한 과학교육 개편방향’ 세션에서 발표자들은 “과학교육의 개편 방향이 갈수록 기업이나 대학 등 사회적 수요와 동떨어진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사 부족한 과학교육

박영아 원장은 지난달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인텔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 결과를 언급하며 한국 과학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박 원장은 “이 대회에서 4등상 이상을 받은 전 세계 학생 300명 중 한국 출신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며 “2등상을 차지한 강선우 학생(18·청심국제고 3년)은 학교 실험실에 대회 준비에 필요한 중금속이 없어 자비 200만원을 들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는 “한정된 교육예산이 무상급식 등에 투입되면서 특별활동과 과학실험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사범대 위주 교사양성제도도 교육과정과 유리돼 있어 문·이과 통합의 취지에 벗어난 과학교육이 일선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1~2년 만에 교체되는 현실을 들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정책 수립을 위해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우일 부총장은 참석자들에게 향후 6년간 현재 중·고등학교 재학생에게 적용될 입시안을 보여주며 “매년 제도가 바뀌다 보니 결국 학부모는 해답을 구하기 위해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부총장은 “서울대 공대에서 조사한 바로는 고교 재학 중 이수한 과학 심화과목 성적이 뛰어날수록 대학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였다”며 “과학교육으로 형성된 ‘합리적 사고’가 학생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과학·SW 기초교육 강화해야

발표자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문·이과 통합안에 대해 지나치게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하다간 자칫 과학교육의 기초를 허물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이 부총장은 “2년 전 서울대 공대 수시모집 면접에서 한 학생이 고교에 수학Ⅱ를 가르치는 교사가 없어 ‘벡터(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나타내는 물리량)’를 모른다고 답해 충격을 받았다”며 “앞으로 문·이과 통합에 따라 수학·과학 선택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이 줄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이공계 공부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과목 선택권을 과도하게 줘 다들 체육만 선택하면 우리 산업은 어떻게 되겠느냐”고도 했다.

박 원장은 “사회과목은 대부분 일반선택에 속해 있는데 과학과목은 꼭 듣지 않아도 되는 진로심화과목으로 분류돼 있어 이대로 가다간 일반고에서 물리Ⅱ 등을 아무도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3년 국내 대학생 벤처1호 회사인 비트컴퓨터를 세우며 한국 소프트웨어(SW) 개발자 1세대로 평가받는 조현정 회장은 “SW 교육 없이는 20년 후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학교 현장에서 SW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SW 없는 과학기술은 없는데 일선 학교에서의 SW 교육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주면 ‘게임한다’는 인식을 ‘코딩(프로그래밍)한다’로 바꿔야 한다”며 “SW는 수학보다 거부감 없이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