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막연한 공포감이 재난을 키운다

입력 2015-06-09 20:31
"초기 판단실패로 번진 메르스 사태
비슷해도 똑같지 않은 재난에 대비
'재난예방백신'으로 삼는 지혜를"

오경두 < 육사 교수·재난관리 전문가 okd0629@hanmail.net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공포와 피해가 우리 사회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로 알려진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2일에서 2주일 정도 잠복기를 거친 뒤 고열과 설사를 비롯해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번 메르스와 비슷한 경우로 ‘사스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3년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일명 사스(SARS)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필자는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독감에 걸려 고생하지만 독감예방백신을 맞지는 않는다. 독감은 메르스나 사스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엄격한 의미로는 예방백신이나 치료약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빠르게 증식하면서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 낸다. 운이 좋아 예방백신에 포함된 바이러스에 걸린 독감환자의 경우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평소에 인플루엔자 바이러봇?감염되지 않도록 자주 손을 씻는 등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면역력을 높이도록 스트레스와 과로를 피하면서 체온유지 등 건강관리에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독감에 걸리면 콧물, 가래, 두통, 고열, 설사 등 증상별로 처방을 받아 증상을 완화시키고 필요하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서 결국 자기 신체의 면역력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독감에 걸리면 대부분 회복되지만, 만성질환자나 허약자는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폐렴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처럼 독감도 메르스나 사스 못지 않게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독감은 우습게 생각하면서 메르스와 사스 앞에서는 벌벌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한 공포감 때문이다. 예방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고 하니 마치 저승사자라도 마주한 듯 오금이 저려온다. 독감도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 우리와 친숙해져서인지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질환은 역학적인 연구와 조사가 미진하기 때문에 전염력이나 치사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경과로 보아 최초 예상과는 달리 전염력은 높고 오히려 치사율은 낮아서 사스의 9.6% 수준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메르스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관리수준은 더욱 높여나가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공포심은 떨쳐내야 한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성 질환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재난의 연쇄법칙’을 따른다. 메르스 초기에 해외 사례를 근거로 전염력은 약하고 치사율은 높을 것으로 판단하는 바람에 초기대응에 실패해 병원 邦막?확산하고 말았다. 다행히 이제 국내 사례들을 통해 메르스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파악, 철저한 관리와 높은 의료수준으로 대응하고 있어 곧 진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더욱 치명적인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역량을 키워줄 ‘재난예방백신’의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재난은 카오스이론의 프랙털적인 성질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어 비슷하면서도 똑같은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고정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재난대응 매뉴얼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난의 근본적인 성질과 법칙들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융통성 있게, 그러나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 정성을 다해야만 우리 자신과 사회를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오경두 < 육사 교수·재난관리 전문가 okd0629@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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