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하 기자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막기 위한 법적조치에 나섰다. 증권가에서는 엘리엇의 이번 조치의 실제 영향력보다 다른 주주들의 호응이 어느 정도가 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엘리엇은 9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며 "이 회사와 이사진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엘리엇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엘리엇은 이번 합병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데 변함이 없다"며 "이번 가처분 소송은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엘리엇의 '의중'에 대해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엘리엇이 주장하고 있는 삼성물산 주주가치 보호라는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리엇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물산의 현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행사가인 5만7234원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의 주가는 지난 4일까지 30% 이상 뛰었다.
엘리엇이 당장 지분을 추가 매수할 가능성도 낮다. 자본시장법 '냉각기간 조항'에 따라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지분 5% 이상 취득을 신고한 이후 5거래일 동안에는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수 없어서다. 엘리엇이 직접 추가 의결권을 확보하려면 이달 10일부터 지분을 사드려야 한다. 현재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 중이다.
그러나 10일 이후 사들인 지분은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주식이 매매 후 2거래일 후에 계좌에 입고되기 때문에 주주명부 확정일인 11일까지 시간이 부족한 탓이다.
한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는 "이번 가처분 신청을 통해 다른 주주들의 호응 유도와 더불어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추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계산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리엇이 추가적인 지분 확대나 우호 지분 확보보다 다양한 법적 수단을 강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달 17일 주총을 지연하는 것을 수준으로 이번 합병 절차에 대한 법적 문제제기를 통해 '잡음'(노이즈)를 일으키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 산정기준이나 향후 사업성 훼손 등을 문제로 삼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수정하기 위해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독소조항을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ISD 독소조항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최종협상 때도 이슈화한 적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투자자가 특정국가의 법 犬?정부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다.
엘리엇이 ISD를 신무기로 내세운다면 아마도 합병비율 산정기준 자체를 문제로 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궁극적인 목표가 삼성물산이 아니라 삼성전자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엘리엇 측이 삼성전자 지분을 일정 부분 취득한 후에 다른 외국인과 연계해 배당확대, 이사진 교체, 회계장부 열람, 임시주총 소집 등 다양한 요구를 하며 삼성을 압박할 수 있다"면서 "사상 초유의 삼성전자 경영권 분쟁을 노리는 포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삼성전자의 주가가 올라가고 삼성전자 지분(4.1%)을 가진 삼성물산의 위상이 더 강화되는 만큼 삼성물산 3대 주주인 엘리엇의 입지도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노림수'인 셈이다.
이민하 한경닷컴 기자 mina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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