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헤지펀드, 그들은 누구인가
찍으면 뜬다
헤지펀드 지분공개 후 기업 주가 평균 9% 상승
60곳 평균수익률 180%
비판도 거세
장기투자 대신 배당에 관심…자사주매입 등 전방위 압박
장기적으로 기업가치 하락
[ 뉴욕=이심기 기자 ] 지난달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총액은 1410억달러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 한 해 자사주 매입규모는 1조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미국의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전망했다. 기존 기록인 2007년 8630억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S&P500 대기업이 보유 현금의 28%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34%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이유를 두 가지로 해석했다. 우선 전 세계적인 양적 완화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넉넉해서다. 그러나 현금 보유량과 상관없이 행동주의 헤지펀드 요구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10년 새 10배로 성장
행동주의 투자란 지배구조가 나쁘거나 경영 효율이 떨어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 의결권을 확보한 뒤 회사를 압박해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높여 수익을 올리는 투자전략을 뜻한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법에는 비주력 사업의 처분과 인수합병(M&A)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은 물론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한다.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기 위해 이사회 참여를 요구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행동주의 투자를 주로 하는 헤지펀드(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자산운용 규모는 1200억달러로 최근 10년간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은 2000년 이전에는 주로 자본력이 약한 기업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자본 규모가 커지면서 글로벌 대기업을 목표로 나서기도 한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을 상대로 자사주 매입 요구를 관철시켰다. 또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를 압박, 온라인 결제사업부문인 페이팔을 분사시키도록 했다. 최근 삼성물산을 타깃으로 삼은 엘리엇매니지먼트도 미국 반도체 회사인 EMC의 자회사 매각 관철 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뿐 아니다. 헤지펀드업계의 거물 빌 애크먼이 이끄는 퍼싱스퀘어는 운용자산 180억달러의 자금력을 앞세워 보톡스 제조업체인 엘러간의 적대적 M&A를 주도하고, 제약업체 화이자가 보유하고 있던 동물 제약사 조에티스의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빌 애크먼, 대니얼 러브, 데이비드 에인혼 등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을 원하는 다른 기관투자가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 돛?CEO)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헤지펀드 공격=주가 상승’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이후 S&P500 대기업 7개 중 한 개꼴(15%)로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부터 회사 경영진 교체나 경영전략 변화, 구조조정 실시 등의 요구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적은 지분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경엔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있다. 기관투자가 역시 목표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지지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을 100으로 할 경우 지난해까지 S&P500지수 상승률은 159%를 기록했다. 그러나 행동주의 헤지펀드 60개의 평균 수익률은 180%를 훨씬 넘었다.
WSJ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요구를 거부한 기업이 주주총회에서 지분대결을 벌인 결과 헤지펀드의 승률이 80%에 육박한다”며 “과거 기업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기관투자가도 실제 표 대결에서는 헤지펀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관투자가의 지지에 힘입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덩치도 커지고 있다. 헤지펀드 리서치(HFR)에 따르면 8000개 헤지펀드 중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71개로 숫자로는 1%도 안 된다. 그러나 운용자산(AUM) 기준으로는 1200억달러로 전체의 4%에 육박한다.
뜨거워지는 찬반논쟁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지를 놓고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주가치를 극대화시킨다는 찬성론과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반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참여로 경영이 효율화되고 이 결과 주주가치가 확대되면서 주가가 오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칸은 “이베이와 페이팔 분사를 비롯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의 이익구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비판론자는 헤지펀드가 자사주 매입 등으로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연구개발(R&D)투자 대신 단기배당으로 기업의 이익을 강제처분하면서 기업의 생존기반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지난달 열린 벅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투자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