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법부라며 스스로는 법 위에 선 무소불위 국회

입력 2015-06-01 20:32
'의회 독재'가 민주주의 파괴한다 (3·끝)


시행령의 수정·변경까지 국회가 명령하겠다는 이번 국회법 개정 파동에서 다시 확인된 사실은 명확하다. 대한민국의 법치와 국가지배 구조까지도 국회가 정하면 다 바꿀 수 있다는 왜곡된 입법관이다. 또 국회가 결정 못 할 사안은 없다는 오만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던 합의체에서 국민연금의 근본골격(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바꾸려던 월권행위도 그렇게 나왔다. 밀양송전탑 건설이 막혔을 때 외부 훼방꾼들까지 국회로 끌어들여 40여일간 허송세월케 한 것이나 철도파업 때의 부적절한 개입도 다 그런 사례다.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언필칭 법을 만든다는 입법부가 스스로 법을 우습게 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전횡이 정부예산의 심의다. 헌법에는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제54조)고 돼 있을 뿐 편성권은 정부에 있다. 나아가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제57조)고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국회는 언제나 월권적 편성권을 휘두르고 있다. 지역구 사업이나 이권과 관련된 소위 ‘쪽지예산’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선수(選數)와 당직에 따라 예산을 나눠먹기하듯 지역구를 봉토화한다. 단순히 월권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揚甄? 그나마 12월2일까지인 예산안 처리시한도 지켜지는 법이 없다. 예산 심의권이 무소불위의 편성권으로 여겨지면서 정기국회 즈음의 여의도엔 매년 볼거리가 반복된다. 부처 공무원이 줄을 서고 무수한 민원인들도 의원회관으로 들락거리는 비능률·무질서가 되풀이된다. 수백조원 나랏살림의 균형도 깨지고 만다.

국정감사장의 진풍경도 그 연장이다. 기업인을 필두로 수많은 민간인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려나간다. 여야 간에 입씨름이라도 벌어지면 종일 증언차례를 기다리다 돌아간다. 그리고 무언의 청구서를 받아든다. 국회야말로 ‘갑질’이다. 의원의 과잉권한은 곳곳에 제도적으로 확보돼 있다.

인사청문회도 국회가 만든 제도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스스로 뇌물전과자이면서 총리와 장관 후보자를 윽박지르고, 새파란 정치 초년생이 장황한 인생교훈을 늘어놓는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기용을 막는 최대 걸림돌이 청문회다. 뚜렷한 하자가 없어도 국회를 두렵게 여기도록 길들이는 관문으로, 조폭 신고식처럼 전락하고 말았다. 대법관, 헌법재판관도 대상이어서 사법부까지 국회 눈치를 보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동료 의원들이다. 동업자의식은 여야 간에도 통한다. ‘이완구 내각’에서 총리와 두 명의 부총리 등 현역 의원이 6명이나 포진하게 된 것도 과도한 인사청문회가 낳은 기형적 상황이다. 장관의 면면을 보면 의원내각제라고 할 정도다.

마구잡이 입법권, 예산의 편성권, 과도한 인사 견제권에다 온갖 특혜적 권한까지 넘친다. 면책특권만이 아니다.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만 해도 선거법을 무시하는 현금모금의 공공연한 창구지만 누구도 손을 못 댄다. 여야 모두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특위다 뭐다 요란하지만 말뿐이다. 이 모든 게 스스로는 법 위에 있다는 특권의식 때문이다. 국회의 권한축소와 남용방지를 위한 국민혁명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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