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직류·교류

입력 2015-06-01 20:31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인간의 원초적 감성인 공포를 부각시킨, 그야말로 야만적인 싸움이었다.” 미국 과학평론가 톰 맥니콜은 저서 ‘AC/DC’에서 19세기 말 전기 표준화를 둘러싼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와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전을 이렇게 평했다. 두 천재들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이기도 했던 이 전쟁은 최초의 표준화 전쟁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고 꼬마전구로 세상을 밝힌 것은 직류식이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가정에 도달할 때까지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는 전류와 전압이 변하지 않는다. 전압의 변화가 없으면 안정성이 떨어져 잦은 고장과 누전, 화재 등에 취약하다. 선로 길이가 길수록 전압의 변동폭도 커져 송전 효율이 떨어진다.

한때 에디슨과 함께 연구하던 테슬라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가 전선을 흐를 때 전류 및 전압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교류 방식을 고안해냈다. 발전소에서 높은 전압으로 전기를 보내도 변압기를 통해 장거리에서 언제든 원하는 전력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의 방식에 주목해 그에게 투자했다. 직류를 고집한 에디슨은 고압의 교류로 코끼리를 죽이고 교류형 전기의자를 발명하는 등 엉뚱한 방식을 동원했다.

에디슨은 그런 행위로 발명왕의 체면까지 완전히 구겼으며 결국 그가 설립한 회사인 GE의 경영권까지 놓치게 됐다. 대중은 손쉽고 값싸게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교류방식에 결국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면서 다시 직류가 각광받고 있다. 이미 휴대용 전기장치인 노트북PC와 휴대폰의 배터리 등은 모두 직류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얻어지는 전력도 대부분 직류를 채용하고 있다. 이제 직류로 발전소 전기를 가정까지 쉽게 보내는 데 도전하고 있다. 직류 전압을 높일 수 있는 특수 반도체와 첨단 변압기 기술 개발 덕분이다. 이론적으로 전자기파가 발생하지 않아 송전로 건설 과정에서 민원도 줄일 수 있다.

최근 한국전기연구원과 LS산전이 제휴를 맺고 차세대 고압직류송전의 핵심기술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우선 고압 직류 차단기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전력 분배 효율성이 높은 스마트그리드를 활용하는 제주도에서 실증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토록 욕을 먹으면서 직류의 표준화를 외쳤던 에디슨이 이런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은 과학기술에도 통하는 모양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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