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관저는 한국에서 백악관(白堊館)으로 불린다. 관(館)은 객사(客舍)다. 주인 아닌 손님이 머무는 숙박시설이다. ‘White House’는 미국의 정궁(正宮)이다. 한데 명나라 사신이 머물던 태평관(太平館), 일본 사신의 동평관(東平館) 등과 격을 같이하는 관사(館舍)로 불린다. 풍문에 중국에서 그리 짓고 우리가 따라 부른다 하니 의미가 새록새록하다.
17세기에 나온 하멜 표류기에는 ‘조선인들은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여관이나 숙소는 알지 못하며’라는 구절이 보인다. 300년 전 날이 저물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먹을 만큼의 쌀을 내놓으면, 반찬과 함께 밥을 내주던 숙박이 904개의 관광호텔을 가진 나라로 개벽했다. 서울시 25개구 중 호텔업 등록 순위 1, 2위를 다투는 강남구에만 37개의 호텔이 성업 중이다. 이 중 특1, 2급 총 14개의 호텔을 모아보면 이들의 풍수 입지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988년 올림픽 특수로 강남구에 들어서기 시작한 호텔들은 모두 하나의 땅 기운을 타고 탄생했다. 바로 우면산 지기(地氣)다. 1988년 지어진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은 지기의 첫 관문이 돼 그 ㅑ×?있다. 사방으로 퍼진 이 기운이 나머지 호텔들의 자리를 관통하고 관계하고 있다. 밭두렁의 줄줄이 엮인 고구마처럼 르네상스호텔을 들어 올리면 14개 호텔이 줄줄이 뽑혀 나온다는 얘기다. 이 중 북쪽의 한 가지는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로 학동초등학교에서 뻗어 나가 가지 내린 열매다. 동쪽 역시 선릉의 주맥 위로 삼성동 라마다호텔이, 수도산 봉은사를 타고 내린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파르나스호텔 역시 같은 기운이다. 리츠칼튼과 머큐리호텔은 충현교회 줄기를 올라타 서쪽을 향했다. 나머지 남쪽 테헤란로의 하얏트호텔은 진선여고에서 내린 맥 위에 자리한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난 자식도 각자 능력이 다르다. 따라서 같은 씨와 밭의 기운을 담아내는 그릇의 능력에 따라 기운의 쓰임이 다름은 당연하다. 호텔이라는 건축물은 사람을 담는 그릇 이전에 24시간 지기를 품는 그릇이다. 여행객은 과한 기운에서 잠을 설치고, 약한 기운에서는 생체리듬이 약해진다. 따라서 기운을 어디서 받을 것인지, 얼마나 받을 것이지,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호텔 매출과 직접적 관련을 맺는다. 입지에 더해 현관, 로비, 연회장, 주차장, 객실, 식당, 피트니스센터 등의 건축물 배치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궁화를 별로 바꾸는 ‘호텔업 등급 결정 평가’는 정량적 등급의 변화에 그친다. 소비자의 정성적 평가는 그보다 날카롭고 매섭다. 과거 여행자의 숙소로 아픈 이의 병원으로 쓰였던 호스피탈(hospital)과 호스텔(hostel)이 호텔이 됐다. 결국 복합 기능으로서의 앵커 역할에 치우쳐 ‘숙박’이라는 초심을 잃는다면 궁(宮)이 관(館)이 되는 우(愚)가 가까이에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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