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 - 한국인 첫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군사대표 이용재 예비역 대령
PKO활동, 인도·코소보 등 근무
"전쟁 상흔 딛고 일어선 한국은 훌륭한 분쟁지역의 롤모델"
[ 이미아 기자 ]
“적도 아군도 없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만이 있을 뿐이죠.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집단도 제 임무에선 ‘협상 대상’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군사담당대표가 된 이용재 예비역 육군 대령(55·사진)은 지난 26일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임기 2년인 ICRC 군사담당대표는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분쟁지역에 파견돼 정부군과 반군, 테러집단을 중재해 국제인도주의법을 준수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고, 업무 특성상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오는 6월20일 이라크로 출국하는 이 대표는 “군인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왔는데 그런 걱정은 예사로 하는 것”이라며 매우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라크 현지 상황은 직접 가 봐야 자세히 알 것 같다”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지역은 종교 갈등이 극심하고, IS와 알카에다 등 주요 테러단체의 근거지라 매우 조심스럽고 업무상 보안 유지 내용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육군사관학교(41기)를 졸업하고 28년간 보병장교로 복무한 뒤 2012년 12월 대령으로 전역했다. 해외 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 계기는 유엔평화유지군(PKO)으로 일하게 되면서였다. 1995년부터 1년간 인도·파키스탄 유엔정전감시단에서 근무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유엔본부 군사부 유럽·중남미 팀장을 맡으며 코소보와 키프로스, 아이티 등 분쟁지역에서 유엔 군사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ICRC 군사담당대표 직책을 맡게 된 것도 유엔본부에서 함께 일했던 외국인 동료들의 안내 및 독려가 큰 이유였다.
활발한 해외 근무엔 유창한 영어 실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대표는 “35세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과 잡지 읽기, 뉴스 청취 등 여러 방법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무식한 군인’이란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PKO나 ICRC 등 주요 국제기구는 채용시 매우 강도 높은 영어 인터뷰를 한다”며 “전화와 화상회의로 3시간 넘게 면접관과 영어로 대화했다”고 말했다.
체력관리도 필수다. 이 대표는 지금도 팔굽혀펴기를 하루 300번씩 한다. “사막에서 제대로 일하려면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위험하다”며 “결국 모든 게 체력전”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PKO 파견 간호장교 출신인 부인과 두 자녀도 그의 ICRC행을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해외로 파견되는 한국 군인들은 특유의 깊은 정과 군인정신을 발휘해 현지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는다”며 “동티모르 상록수부대와 이라크 자이툰부대, 필리핀 아라우부대 등은 특히 민간지원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은 전쟁의 상흔을 딛고 국제사회 지원을 받아 일어선 국가로서 분쟁지역에 훌륭한 롤모델이 된다”며 “세계로 시야를 넓히는 군인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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