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1000만弗 뒷거래"…FIFA 비리 쇼크, 후원사 초긴장

입력 2015-05-28 21:12
속속 드러나는 FIFA 부정부패…111년 만에 최대 위기

미국 법무부 "월드컵개최지 선정 앞두고 뇌물 수수"
24년간 전·현직 간부들 최소 1억5000만弗 '꿀꺽'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도 비리 연루


[ 박수진 / 임근호 기자 ] 국제축구연맹(FIFA)이 1904년 창립 이후 11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 법무부와 스위스 검찰의 공조 수사로 뇌물 수수 등 수십년간 이뤄져 온 FIFA의 부정부패가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29일(현지 시간)로 예정된 FIFA 회장 선거는 계획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존 위팅데일 영국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은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5선 연임에 성공한다면 FIFA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블라터 회장은 일단 미 법무부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측근이 모두 비리에 연루됐다.

○남아공, 1000만달러 뇌물 제공

스위스 검찰은 지난 27일 취리히의 한 5성급 호텔을 급습했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 등을 둘러싸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7명의 FIFA 고위 임원을 체포했다. 스위스 검찰과 공동 작전을 편 미 법무부는 이들을 체포한 직후 14명의 기소 대상자 명단을 공개했다. 기소 대상은 FIFA 고위직 아홉 명, 미국과 남미 스포츠마케팅 회사 간부 네 명, 뇌물수?중재자 한 명이다. 이들에겐 2018년 러시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국 결정 과정뿐 아니라 각종 국제축구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갈과 온라인 금융사기, 돈세탁, 탈세, 국외계좌 운영 등 47개에 달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적용됐다.

FIFA에서는 제프리 웹 현 부회장, 에두아르두 리 집행위원, 훌리오 로차 발전위원, 니콜라스 레오즈 집행위원 등이 포함됐다. 1998년 회장 취임 이후 16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는 블라터 회장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 법무부가 이날 공개한 공소장에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FIFA 고위 간부와 남아공 관계자 사이에 오간 돈거래 정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당시 FIFA 집행위원이던 잭 워너 FIFA 부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남아공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돈거래는 2010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본격화됐다. 워너 전 부회장의 측근이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방에서 남아공 월드컵 유치위원회 고위 관계자로부터 서류 가방을 받아오면서부터다. 가방엔 서류 대신 1만달러 지폐 묶음이 가득했다. 착수금이었다.

워너 전 부회장은 찰스 척 블레이저 전 FIFA 집행위원장에게 “남아공 유치위가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하며 ‘표 단속’을 했다. 이 돈을 받은 워너 전 부회장 등 세 명이 결국 남아공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게 미 법무부의 판단이다. 뇌물은 FIFA 계좌를 거쳐 워너 전 부회장에게 건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1000만달러는 차명계좌가 아니라 FIFA의 스위스 공식 계좌를 거쳐 워너 전 부회장의 개인 계좌로 흘러갔다. 돈거래가 그동안 FIFA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미 법무부는 1991년 이후 지난 24년간 FIFA 전·현직 간부들이 뇌물로 최소 1억5000만달러(약 1675억원)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국제 축구계를 타락시키고 자신들의 지갑을 부풀리는 데만 혈안이 됐다”고 비난했다.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도 비리 연루

불똥은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업체인 나이키로도 튀었다. 블룸버그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이 28일 “법무부의 공소장에 언급된 스포츠용품업체가 나이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FIFA 비리 연루자에 대한 공소장에서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스포츠용품업체가 1996년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에 축구화 및 운동복, 각종 액세서리 등을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뇌물을 준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함께 밝혔다.

공소장에서는 ‘스포츠용품업체A’라고만 적혀 있지만 나이키 웹사이트에 1996년 나이키가 브라질축구협회(CBF)와 1억6000만달러 규모의 스폰서 계약을 맺은 사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아디다스도 오랫동안 FIFA 등의 후원사로 활동했지만 독일 회사여서 의혹에서 제외됐다.

미 법무부는 “이 업체는 스폰서 계약 체결 3일 후 CBF에 3년 동안 3000만달러의 마케팅 수수료를 지급한다는 한 장짜리 별도 계약서에 사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돈이 CBF의 외곽조직(마케팅회사)을 통해 CBF와 FIFA 고위직에 뇌물과 리베이트 명목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게 기소장의 내용이다.

나이키는 공소장 공개 직후 인터넷 성명에서 “당국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나이키는 사업이나 스포츠에서 어떤 형태의 비윤리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수진/임근호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