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위기의 조선업, 범용선박 강점 포기하면 안돼

입력 2015-05-20 20:35
한국 조선산업의 나아갈 방향

고유가 배경으로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 석권한 한국
유가 급락에 직격탄…중국 추격, 일본 부활도 큰 부담
범용선, 세계시장 75% 차지…고급 카페리 건조도

"세계 여객선 건조지역의 축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환되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에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홍성인 <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 >


한국의 조선산업은 1970년대 호황기 세계시장에 진입하면서 곧바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가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에는 반세기 가까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업체들의 실적 저하가 나타나고 있고, 중견·중소 조선사에 대한 채권단 지원도 중단 위기를 맞아 국내 조선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의 배경이 되고 있는 국내 조선산업의 현안을 살펴보자. 조선산업은 국가적 위기 때 수출시장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2000년 이후에는 30~45%에 이르는 높은 시장 점유율로 세계시장을 이끌었다.


국내에서도 상당 기간 품목기준 수출 1위를 기록했다. 고용 창출에 앞장서는 등 대표적인 국가 주력산업으로 평가 받아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고부가가치 선박 쪽으로 차별화하는 동시에 고유가를 배경으로 급성장한 해양플랜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해 드릴십 등 대형 해양플랜트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조선산업을 국가 중점 육성 대상으로 지정한 중국이 일반 상선은 물론 해양플랜트 시장에서도 바짝 추격해오고 있다. 엔저(低)로 무장한 일본도 다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조선업계가 직면한 문제로는 우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된 유가 하락에 따른 해양플랜트 시장 침체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한 데다 셰일가스 생산 및 수출이 증가하면서 유가 하락이 진행됐다. 이는 오일메이저의 수익 악화로 이어지면서 해양플랜트 시장 침체를 가져왔다.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마다 손익분기점이 다른데, 최근 유가 수준에서는 다수 프로젝트의 개발 유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수출시장 파수꾼 조선산업 위축

유가 하락에 따른 해양플랜트 발주 감소는 시스템과 인력구조를 해양플랜트 중심으로 개편한 국내 대형 조선업체 및 관련 기자재 부문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미 확보한 해양 프로젝트도 설계 변경에 따른 원가 상승, 외부 조달 지연, 이종 작업에 의한 야드 효율성 저하 등으로 수익이 크게 떨어졌다.

과거 경쟁국이던 일본은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엔화가 30% 이상 절하돼 가격경쟁력을 회복했다. 엔화가 절하되면서 국내 주력 선종인 초대형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의 경쟁자로 일본이 다시 부상하고 獵? 자국 발주물량이 많기는 하나 지난 1분기 기준 일본의 1만40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이상 컨테이너선 수주잔량은 36척, LNG선은 20척이었다. 세계적으로 설비과잉 논란이 있음에도 수주 선박의 원활한 건조를 위해 일본은 초대형 도크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중견 및 중소 조선업체들의 누적적자 심화도 중요한 변수다. STX조선해양이 2013년 채권단의 자율협약 대상에 편입된 뒤 채권 금융회사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지원 중단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선가가 호황기 대비 30% 내외로 하락한 수준이어서 지금과 같은 저선가 구조에서는 건조할수록 적자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 세계 대부분의 조선소가 비슷한 상황이다. 여기서 사업을 철수하면 범용선박 건조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업체가 크게 줄어 정상 수요기는 물론 차기 호황기에서도 시장 견인이 불가능하게 된다.

국가지원 中, 엔화약세 日의 압박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국내 업체의 건조 경쟁력이 아직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조선시황이 살아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세계 조선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호황기에 투기 수요까지 가세해 발주된 많은 선박이 글로벌 경제의 느린 정상화로 시장에 흡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노후선 및 저연비 선박이 지속적으로 퇴출되고 세계 경제의 안정궤도 진입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조선 시장 수요는 조만간 과거 평균치 규모를 회복할 전망이다. 해양플랜트 시장도 오일메이저의 프로젝트 점검이 완료되고 국제유가가 적정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부터 재개될 전망이다. 이런 전망을 전제로 다음의 전략 추진을 제안해 본다.

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가 지향하는 고부가가치 분야 집중화 전략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 고부가가치 제품, 특히 해양플랜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하고 해당 부분 취약 생태계를 보완해야 한다. 기본설계 업체를 수직계열화해 공급관리망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해양기자재 적기 조달을 위한 국산화 및 투자 유치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 일부 대형 조선사와 중견·중소조선을 중심으로 범용상선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 세계 선박시장의 약 75%에 해당하는 범용선박(탱커, 컨테이너선, 벌크선)시장은 국내 기자재산업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선박 건조공정의 인력 체화 특성을 감안해 기술 및 기능인력, 도크 및 크레인 등 기존 건조능력 유지를 위한 설비 보완도 추진해야 한다. 시리즈선 건조 전략을 통해 건조 비용을 절감하고 우리의 생산 및 기술 우위를 발휘한다면 충분히 시장을 주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빅3, 고부가가치 분야 집중을

아울러 단계별 국제규제 강화로 커지는 범용 친환경 선박시장도 집중 공략해야 한다. 선박제조연비지수(EEDI), 황산화물(SOx) 배출, 질소산화물(NOx) 배출 규제 강화가 단계별로 확정돼 진행되고 있는 만큼 가격 못지않게 기술 중심으로 형성되는 친환경 선박시장에도 적극 대응해 경쟁국과의 차별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국내 수요가 뒷받침되는 노후 관공선의 LNG 추진 선박으로의 대체, 노후 연안여객선의 고품위 친환경 여객선으로의 전환 등?적극 추진하고 관련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 세계시장 공략에도 나서야 한다. 연안여객선의 신(新)건조 추진은 국가 과제로 친환경 엔진, 첨단소재 탑재, 선내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한 고품위 카페리 모델선을 건조해야 한다. 안전을 도모하고 이동 목적보다 선내 공간과 콘텐츠를 즐기는 국내 연안여객 항로의 신상품화 가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 여객선 건조지역의 축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환되고 있는 과도기적 상황에도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홍성인 <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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