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린 왕자'와 '1000원 식당'

입력 2015-05-20 20:35
오랜만에 다시 읽은 '어린 왕자'의 순수함
'1000원 백반집'에서 따뜻한 사랑 다시 봐

김선희 < 매일유업 사장 seonheekim@maeil.com >


오랜만에 학창시절 좋아했던 책을 찾아 다시 한번 읽어봤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다. 그때 배운 서툰 프랑스어 실력으로 제일 먼저 읽은 책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 B612를 떠나 여행에 나선다. 권위적인 왕이 사는 별과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이 사는 별, 소유욕에 사로잡혀 숫자만 세는 사람이 사는 별, 맹목적으로 가스등을 끄는 사람이 있는 별 등을 거쳐 일곱 번째 행성 지구로 오게 된다.

어린 왕자는 사막여우에게서 친구가 되는 법, 서로가 길들여지는 법을 알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마음으로만 잘 보인다는 것을 배운다. 고향별에 두고 온 장미꽃의 소중함을 느끼고, 장미의 투정이 사랑인 것도 깨닫게 된다.

교만하고 허영심 많은 장미의 온갖 투정에도 따뜻한 사랑과 희생을 보여준 어린 왕자. 요즘과 같이 무분별한 소유욕, 권위와 지배욕, 자기과시 욕망 등이 익숙해진 일상생활 속에서 어린 왕자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점차 잊혀져 가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린 왕자를 연상시키는 반가운 기사가 눈에 띄었다. 밥과 된장국, 세 가지 반찬이 곁들여진 백반을 단돈 1000원에 팔아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광주 동구 대인시장의 ‘1000원 백반집’ 이야기다. 1000원 백반집은 식당 주인이었던 김선자 할머니가 별세한 이후에도 주변 상인과 개인 기부자들이 식당 돕기에 나서면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평생 이웃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싶다’는 김선자 할머니의 소망에 따라 누군가는 쌀 한 포대로, 누군가는 몇 천원의 작은 도움으로 할머니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게 기사 내용이었다. 기나긴 가뭄 속의 단비 같았다. 우리 모두 어린 왕자의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에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의 ‘어린 왕자’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에 매일유업 광주공장에 내려가면 꼭 할머니의 1000원 백반집을 찾아가보고 싶다.

김선희 < 매일유업 사장 seonheekim@mae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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