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꽃피우는 기업가 정신
(3) '성공에 대한 집념' 박영무 유니코바 회장
21세 때 사랑 찾아 브라질로
양계장·신발·내비 사업 실패…라디오·배터리 팔아 재기 발판
"나는 사장 아닌 세일즈맨"
작년 매출 1931억원
열차 에어컨 사업도 시작…나이 일흔에 끝없는 도전
"한국 청년들에게도 기회 있죠"
[ 정인설 기자 ]
1966년 1월17일.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날짜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21세.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무작정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행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브라질에 먼저 이민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성공해 뼈를 묻겠다는 결심도 했다. 사업 자본금은 한국에서 들고 온 100달러가 전부였다. 브라질 최대 전자부품 기업인 유니코바의 박영무 회장 얘기다.
유니코바는 청춘남녀의 사랑에서 시작됐다. ‘한국과 브라질은 하나(Uni+Korea+Brazil)’라는 뜻의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어진 사랑의 결실체라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아내를 따라 브라질에 왔고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으니 유니코바 ?지분 중 절반은 아내에게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양계장서 시작해 전자부품사로 성장
박 회장이 브라질에 정착한 해에 처음 시작한 일은 양계장 사업.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데다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1년 만에 망했다. 원인 모를 전염병으로 기르던 닭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후 상파울루에서 처가 식구들과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양면 점퍼를 아내가 만들고 박 회장은 이곳저곳에 물건을 팔러 다녔다. 사업이 잘돼 15명이던 직원 수는 금세 갑절로 늘었다. 박 회장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1970년대 브라질에서 확산되던 라디오였다.
박 회장은 1973년 유니코바라는 회사를 세워 브라질 전국 각지를 돌며 라디오를 팔았다. 라디오가 잘 팔리자 사업을 조금씩 확장했다. 배터리 제조에 이어 자동차용 오디오 사업에 손을 댔고 셋톱박스와 무선공유기 등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박 회장은 “업종은 달라도 물건을 팔아야 돈이 된다는 사업의 본질은 같다”며 “사장이 아니라 영원한 세일즈맨이라는 생각으로 뛰다 보니 일이 풀렸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직접 영업을 뛰고 거래처를 돌며 얘기를 듣는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일반 제조회사나 유통업체와 거래하지만 소비자의 불만을 듣고 개선해야 사업이 번창한다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에서다. 브라질 무선공유기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모터사이클 배터리 시장 진출 3년 만에 두 자릿수 점유율을 차지한 것도 이 같은 소통의 결과라고 자부하고 있다.
유니코바는 10개 사업군에 걸쳐 1200명의 직원을 둔 브라질 1위 토종 전자부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5년 새 2배 이상 성장해 지난해 193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신발 때문에 맨발이 되다
박 회장이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다. 의류업을 해봤다는 자신감 때문에 1988년 신발 사업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한국에서도 서울올림픽 바람을 타고 르까프와 프로스펙스 같은 토종 브랜드가 뜨던 때였다. 때마침 보호무역으로 일관하던 브라질이 수입 개방에 나서 출발은 좋았다. 한국에서 컨테이너가 들어오기만 하면 한국산 운동화는 한 달에 수만 켤레씩 팔렸다.
쉽게 끓는 냄비가 쉽게 식는다고 했던가. 사업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매대에 깔면 나가던 운동화가 1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색상에 민감한 브라질 소비자의 취향을 잘못 읽은 탓이다. 제품이 안 팔려 30~40% 싸게 내놨다. 처음엔 나가나 싶더니 이내 싸구려 운동화라는 낙인이 찍혀 더 안 팔렸다.
그러기를 수개월. 그동안 번 모든 돈을 날렸다. 이후 재기에 성공했지만 2010년엔 5년간 공들인 내비게이션 사업에서 쓴맛을 봤다. 국토가 넓은 브라질 특성상 내비게이션 지도의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업데이트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사업 실패로 돈은 잃었지만 ‘노력하면 끝내 꿈은 이뤄진다’는 자신감과 집념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에어컨 사업으로 새로운 시작
박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올해 한국 나이로 70세지만 매번 새로운 사업 ?도전한다. 최근 5년 새 2차전지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박 회장은 LED 조명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순차적으로 가로등을 LED로 교체할 방침이어서다. 이미 박 회장은 상파울루 공무원들과 함께 유니코바 LED 조명을 설치한 터널을 순회하며 주기적으로 에너지 절감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에어컨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유행을 타는 가정용 에어컨이 아닌 매출이 안정적인 철도용 에어컨 사업이다. 처음 하는 사업인 만큼 에어컨 전문 기업인 한국의 오텍캐리어와 손을 잡았다. 한국의 현대로템이 브라질에 전철을 납품하기 시작해 공급처가 안정적인 것도 호재였다. 현대로템이 브라질 고속철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 유니코바의 에어컨 매출은 급증할 수 있다.
올해부터 오텍캐리어와 함께 유니코바의 마나우스 공장에서 에어컨을 생산해 현대로템에 공급한다. 브라질에서 에어컨을 만들어 납품하면 해외에서 수입한 제품보다 가격을 더 쳐준다. 박 회장은 브라질 마나우스에 에어컨 공장을 새로 지어 생산량을 늘릴 방침이다.
박 회장은 “지금이 브라질에서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브라질 경제가 어려워 대부분 기업이 브라질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브라질 의류산업의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한인 패션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위기가 기회”라는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브라질 경기가 좋으면 브라질 정부가 이방인인 한국인에게 좋은 기회를 주겠어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브라질 경제가 호황이던 5년 전을 생각 曼만?답이 나옵니다. 속도가 더디지만 브라질 정부가 도로나 철도 건설에 계속 투자할 것이기 때문에 LED나 철도 에어컨 같은 인프라 관련 파생 산업 전망이 좋습니다. 앞으로 한국 청년들에게도 이런 사업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 박영무 회장 약력
△1946년 부산 출생 △1964년 경복고 졸업 △1966년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2학년 중퇴 △1966년 브라질 이민 △1967년 양계장 사업 실패 △1967년 의류 사업 시작 △1973년 유니코바 설립 △1988년 신발 사업 뛰어들어 실패 △1995년 자체 배터리 사업 시작 △2010년 오토바이 배터리 생산 △2014년 철도 에어컨 사업 시작
상파울루=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