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업무추진비

입력 2015-05-19 20:4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업무추진비는 오랫동안 판공비(辦公費)로 불렸다. 글자 그대로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러나 공직자들에게는 ‘쌈짓돈’ ‘눈먼 돈’ ‘묻지마 수당’으로 여겨져 왔다. 영수증 처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조세대장에 올리지 않고 임의대로 세금을 걷어 쓰는 은결(隱結)이란 토지를 따로 뒀다. 그래서인지 나랏돈을 제멋대로 쓰는 관행은 좀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업무추진비 대신에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라는 용어도 쓴다. 정치권에는 ‘대책비’ ‘직책비’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에 매달 국회대책비로 4000만~5000만원씩 나온다”며 “그 돈은 전부 현금화해서 국회대책비로 쓰는데 남은 돈을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곤 했다”고 밝혔다.

입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공판에서 “위원장 시절에 받은 직책비 일부를 아들의 유학 자금 등 개인 용도로 썼다”고 진술했다.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풔윰캑?질문에는 “된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홍 지사의 ‘대책비’나 신 의원의 ‘직책비’는 사실 국회 예산 항목에 없다. 유사 명목의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연간 80억~90억원 정도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 18개 상임위원회와 각종 특별위원회에 주는 돈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월 4000만원 안팎,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월 1000만~2000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 돈을 간사와 위원들에게 떼어주기도 하고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도 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헌법재판관 시절 월 400여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불투명하게 사용했다며 낙마시키고 횡령 혐의로 고발까지 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정치인이다. 이 후보자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명예 손상을 입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드러난 활동비 유용은 규모가 몇 배나 된다. 이미 개인적인 생활비와 자식 유학비로 썼다고 자백까지 했으니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국가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 스스로 ‘국민 감사’라도 자청해야 할 판이다. 요즘 의원들은 당 대표를 오래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국회부의장을 그만둘 때 쓰고 남은 판공비 전액을 반납했던 일도 모르는 모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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