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방문없이 계좌개설 허용…핀테크 시대 대응
신분증 사본·영상 통화 등 네 가지 방식으로 인증
지방은행 수도권 진출 수월…젊은고객 유치 치열해질 듯
[ 박동휘 기자 ]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은 1990년대부터 금융회사 창구에서 금융소비자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도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이 덕분에 20여년 전에 이트레이트뱅크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이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금융 거래에선 ‘오프 라인’을 고집했다.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비(非)대면 인증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핀테크(금융+기술) 혁명이 가져올 글로벌 금융산업 변화에 뒤처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2년 만에 비대면 인증 허용
현재 금융회사에서 첫 번째 계좌(퍼스트 어카운트)를 만들려면 소비자는 반드시 해당 회사의 영업점을 방문해야 한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한 뒤 확인이 끝나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정부가 1993년 시행한 금융실명법 제3조(금융실명거래) 1항의 ‘금융회사는 거래자의 실명확인 의무가 있다’는 규정을 대면 인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22년간 굳어진 이 규정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얼굴을 맞대고 본인 확인하는 것 외에 신분증 사본 제시, 영상 통화, 현금카드 전달 등을 통한 방문 확인, 기존 계좌 활용 등 네 가지 방식도 인증 방식으로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금융사기 방지를 위해 네 가지 방식 중 두 가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되 금융회사별로 추가 인증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허용해 다양한 본인 인증 기법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부터 은행 외 다른 금융권에도 비대면 인증이 허용되면 자본 시장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펀드에 쉽게 가입할 수 있어 시장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 간 무한경쟁
은행들은 비대면 인증 허용과 관련해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제 도입이 현실화하는 것을 비롯, 기존 은행으로선 진입 장벽이 점차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지방 은행들은 수도권 금융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지점을 새로 열거나 직원들을 가입자 집이나 직장에 파견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해외 인터넷전문은행의 국내 진출을 막고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 가운데 하나가 사라진다는 점도 시중은행으로선 부담이다.
금융거래 관행에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까다로운 비대면 인증 절차를 이용하느니 집이나 직장 근처 영업점을 방문하는 게 더 편할 수 있어서다. 은행들이 계좌 개설 및 해지, 대출, 펀드 등 상품 가입 등 본인 확인이 필요한 각종 업무에 비대면 인증 방식을 어느 정도 활용할지도 미지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퍼스트 어카운트 쟁탈전이 벌어질 수 있다”며 “시장점유율을 늘리려는 곳은 공격적으로 비대면 인증을 도입하겠지만 금융사기 등 위험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별로 도입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훈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결국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금융거래 방식을 활용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제도 개선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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