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비자는 뒷전인 '펀드 이동제'

입력 2015-05-17 20:42
조재길 증권부 기자 road@hankyung.com


지난 15일 증권사 콜센터에 전화해 “다른 회사로 펀드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예상대로 직원의 집요한 설득이 이어졌다. “옮겨 봤자 펀드 판매사에 내는 수수료(판매 보수)에 차이가 없어 돈을 아낄 수 없으며 이전 절차도 복잡하다”는 게 골자였다.

증권사 은행 등 펀드 판매회사 간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2010년 도입한 ‘펀드 판매사 이동제’가 유명무실하다. 펀드 이동제는 고객이 환매 수수료를 물지 않고 판매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올 1~4월 펀드 이동제를 활용해 판매사를 바꾼 계좌는 월평균 569건이다. 전체 계좌(1426만개) 대비 0.004% 수준이다. 이마저도 작년 월평균 692건에서 17.8% 감소했다. 대다수가 펀드를 환매하기 전까지 판매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만족해서일까.

금융소비자연맹이 작년 말 실시한 소비자 설문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만이 가장 많은 것으로 펀드 등 투자상품(51.2%)이 꼽혔다. 만족도가 높은 금융상품 순서에서도 펀드(3.4%)는 꼴찌였다.

그럼에도 펀드 가입자들이 판매사를 바꾸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꿔 봤자 기대할 게 별로 없어서’란 지적이다. 수익률이 갑자기 나빠져도 거액 자산가가 아니라면 금융회사 직원들이 전화 한 통 안 하는 게 일반적이다.

불합리한 규제와 복잡한 이전 절차도 빼놓을 수 없다. 관련 법에 따르면 펀드 계좌를 옮길 때 ‘클래스(종류)’를 달리할 수 없다. 예컨대 같은 펀드라도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A·C클래스를 온라인 전용인 E·S클래스로 갈아탈 수 없다. 판매사를 옮길 때 종전 금융회사에서 확인서를 받도록 만든 절차도 소비자 입장에선 번거롭다.

판매사 간 사후관리가 비슷하고 수수료도 같은데 소비자들이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펀드 계좌를 옮길 필요가 있을까.

금융당국은 도입 당시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자신했던 펀드 이동제가 왜 ‘찬밥’이 됐는지 잘 따져보기 바란다.

조재길 증권부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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