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많이 찍어내기로 세계 1등인 우리 국회가 ‘페이고(pay-go) 법안’에 대해서는 수년째 무관심이다. 매년 대규모 세수부족이 반복되고 포퓰리즘 경쟁에 따른 복지지출도 눈덩이처럼 커져가지만 재정의 건전성에는 오불관언이다. 엊그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또 한 번 페이고법 조기 처리를 촉구한 배경이다. 대통령의 호소가 처음도 아니다. 예산을 편성하거나 새 법을 만들 때 반드시 재원조달 대책도 세우자는 페이고 원칙에 대해 1년 전 같은 회의에서도 대통령의 강한 역설이 있었다.
대통령은 재정지출을 야기하면서도 재원대책은 없는 마구잡이식 의원입법을 겨냥했다. 정부입법은 이미 국가재정법에 따라 재원조달 방안 제출이 의무화돼 있다. 정부는 2014년도분부터 예산편성에도 이 원칙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만 붙이면 된다. 그나마도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 미첨부 사유서를 내면 그만이다. 지난해 4분기의 의원입법안 중 재정소요가 수반되는 257건의 83%(213건)가 비용추계서도 안 냈다.
19대 국회가 시작된 2012년부터 의원입법에도 페이고 원칙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입법권의 과잉제한이라는 이유로 3년째 그대로다. 정작 과잉은 의원들의 입법권이다. 19대의 의원입법은 1만3517건으로 역대 최대였던 18대 국회 4년치(1만3913건)만큼 된다. 페이고 원칙을 외면하다 보니 예산차원에서 보면 무책임한 법안이 부지기수다.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안은 수급대상을 늘려 매년 516억원이 더 필요해진다. 월남전 참전자까지 포함하면 연간 1조4000억원이 들어간다. 과학기술인공제회법 개정안은 기술료 중 일부를 이 공제회로 돌려 세입이 914억원 줄게 된다. 도로법 개정안은 지자체 몫 신설·유지비용 5000억원을 국가부담으로 돌렸다. 의원입법으로 연평균 82조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는 조사(2013년)도 있다.
국민연금 지급률 50% 인상안도 같은 맥락이다. 돈 버는 사람 따로,인기만 좇아 마구 쓰는 사람 따로다. 졸속입법, 퍼주기 만능, 국회독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국회의 무책임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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